사실 재정경제부는 지난 2001년 실효성이 약한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선언적인 "지역균형발전특별법(안)" 제정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지방분권 논의의 핵심 의제인 국세와 지방세의 개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런 재정경제부가 적극적인 태도변화를 보인 것이다.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각계의 꾸준한 목소리가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겠지만, 국세와 지방세의 개편까지를 포함하는 금번의 지방분권 논의는 그 폭과 깊이가 과거와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방분권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도 예전과 달리 높아 보인다.
그런데 그간의 분권화 논의는 어느 정도 지방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해온 경향이 강했다. 예를 들면 서울에 우리나라 기업 본사의 몇 %가 몰려(2002년의 경우 총법인세의 71%가 서울에서 걷혔다)있으니 지방에 대기업의 본사를 데려오고, 사람과 돈(2002년의 경우 예금의 51%, 은행대출의 47%가 서울에서 이루어졌다)이 대부분 서울에 모여 있으니 눈에 거슬리는 이런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분권화 논의가 전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발전격차에 따른 지방의 ‘좌절’이나 각종 권한의 중앙집중으로 인한 지방의 ‘무력감’이 분권화 주장의 진정한 동기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물론 ‘불균형’과 ‘좌절’, 그리고 ‘무력감’은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정치적 변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분권화가 주장되고 추진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주장은 몇 년 전 수도권 집중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수도권의 어느 광역단체장이 말했듯이 "기업의 입지선택이나 개인의 주거와 직업선택에 대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것이고, 결국 국가경쟁력 상실로 귀결될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에 대항할 논리로서도 궁색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사실 분권화의 논리는 그처럼 빈약한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 선진국에서 일찍부터 이론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밝혀진 사실 가운데 하나는 ‘만일 집권과 분권의 사회적 비용이 동일하다면, 분권의 경우가 사회적 이득을 더 크게 한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분권화 논의의 본질은 ‘효율성’에 있다. 인적·물적 자원이용의 효율성, 그리고 정책운용의 효율성에 대한 점검과 판단이 분권화 논의의 핵심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분권화를 논의할 때는 집중과 분산, 혹은 집권과 분권 사이에서 ‘사회적 비용’을 가장 적게 하고 ‘사회적 이득’을 가장 크게 하는 최적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기구의 지방 이전이나 특정 권한의 지방이양의 범위 혹은 정도도 이런 기준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되어야 한다. 물론 이전대상 기구의 기능과 이양대상 권한의 내용에 따라 제각기 다른 최적 지점이 찾아질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오히려 집중 혹은 집권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간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을 중심으로 분권화 논의가 진행되어 왔지만, 필자는 우리나라 분권화 논의의 핵심 이슈는 자체적인 계획권과 재정권, 그리고 인력운용권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것들은 지방자치의 완성을 위해 지방정책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높이고 내적정합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필수요건이다.
그리고 향후의 분권화 논의는 집중과 집권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과 비효율의 크기를 밝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의 상실로 귀결될 것임을 증명하는데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증거와 힌트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일단은 새 정부의 첫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분권화 논의의 권한이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개운하지는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