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에서 현재까지
대외 공신력 인정 한국신문협회·ABC 가입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대상 4년 연속 선정
독자위원회·청소년기자단 등 쌍방향 소통

▲ 경상일보의 창간을 알리는 홍보 플래카드가 거리에 붙어있다.
◆ 출범

1989년 5월15일 경상일보(慶尙日報) 창간호가 발행됐다. 지역 유지 50여명이 뜻을 모아 울산 언론의 새 역사를 창조한 것이다. 언론불모지였던 울산의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해 궁극적으론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앞장서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보다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 창간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치로 출범한 울산 최초의 지역 종합일간지인 경상일보의 창간 작업은 울산시 중구 학성동 432-353 학성빌딩에서 진행됐다. 1988년 10월31일 회사 설립 등기 및 상표등록을 완료했다.

초대 대표이사는 젊은 시절 언론계에 종사하다 비료 회사를 경영하던 김상수씨가 맡았다. 이어 1988년 12월29일 정기간행물 등록 인가(문화공보부 가-38)를 받았다. 이어 기자 및 사원 공채를 시작, 1989년 2월 기자 60여명을 시작으로 총 180여명의 사원을 뽑았다.

2월 하순 경주 유스호스텔에서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새 출발의 각오를 다졌다. 3월3일 공채 직원들이 첫 출근했다. 1인 1책상을 갖추지 못할 정도로 비좁은 사무실에서 첫 소식지를 냈다. 4월30일 본사 사옥을 신정1동 635-9번지 거마빌딩으로 옮겼다.

5월15일 드디어 창간호가 나왔다. 慶尙日報라는 한자 제자에다 세로쓰기 8쪽 신문이었으나 독자들로부터 ‘지역발전의 기수’ ‘정의 실현의 선봉’ ‘문화 창달의 주역’이라는 사시(社是)에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지역신문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제자는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로 서예가였던 여초 김응현 선생의 글씨다. 회사의 상장(엠블렘)은 울산대학교 디자인대학 박노석 교수가 디자인했다. 편집국의 진용은 초대 이상윤 국장을 비롯해 배승원 정경부장, 조돈만 사회부장, 양희주 문화부장, 윤준홍 편집부장, 박중성 교열부장 등으로 짜여졌다.

▲ 1989년 5월15일 경상일보 창간호.
◆ 시련

울산 최초의 신문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기대는 남달랐고 직원들의 열의도 높았으나 1년여 만에 자금난으로 경영진이 물갈이 되는 등 경상일보의 출범초기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1990년 8월9일 대표이사 사장에 당시 지역내 백화점 CEO(최고경영자)로서 명망이 높았던 이석호씨, 부사장에 장사무씨가 취임했다.

그러나 한 달여 만인 9월24일 경영진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김상수씨가 대표이사로 재취임했다. 심기일전해서 주간지 울산뉴스(1991.3.29~1992.2.26), 자매지 경상토픽(1992.2.1~1992.11.14)을 발간하는 등 재출발을 다졌으나 경영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1991년 8월6일 대표이사는 다시 부사장 이동휘씨로 바뀌었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1992년 7월10일 주주로서 본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최성학씨가 5대 사장에, 1993년 4월1일엔 제조업체 전문경영인 출신의 홍남출씨가 6대 사장에 취임했다. 전체 임직원들은 대표이사의 임기가 1년을 넘기지 못할 만큼 부침이 심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더욱 사랑받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 임직원들의 사명감과 노력 덕분인지 울산시민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은 점점 높아져 갔고, 회사운영이 빠듯한 가운데 성장을 거듭, 1992년 5월9일 남구 무거동 남운프라자 7~8층으로 사옥을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공신력을 인정받아 1994년 6월22일 한국신문협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3년여 만인 1996년 6월6일 울산MBC 상무 출신으로 본사 전무로 영입됐던 최종두씨가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석간이던 신문발행을 조간(1997.1.3일)으로 바꾸고 신문 디자인도 전면 가로쓰기에 한글전용(1997.7.15)으로 바꾸었다. 제호도 경상블루컬러 바탕에 흰색 디자인체의 한글로 갈아입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변신이었다.

▲ 1989년 5월15일 창간기념식.
1997년 9월9일에는 독일산 새 윤전기도 들여 32면(4면 컬러) 또는 28면(6면 컬러)이 가능해졌다. 곧이어 1998년 3월9일 CTS 전산시설을 본격 가동하는 등 사세확장에 나섰으나 IMF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국가적 외환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극단적으로 10개월이 넘도록 월급이 지급되지 않은 시기도 견뎌내야 하는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에 지면을 주2회 16면으로 감면했다가 1998년 12월23일 전일 16면으로 조정했다. 구조조정이라는 시련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 도약

노조가 앞장서 회사 살리기를 시작했다. 대주주이던 류준걸 평창종합건설 회장이 추가 출자를 하고, 노조는 2차 구조조정에 합의함으로써 경영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한 가운데 1999년 2월 드디어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인터뷰를 할 만큼 지역 신문으로서의 기상은 드높았다.

▲ 2008년 5월24일 전 직원 극기훈련(백운산 탑골샘).
영정상화의 막중한 책임을 띠고 6대 사장을 지낸 홍남출씨가 8대 대표이사로 되돌아왔다. 2차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사무실을 1개 층으로 통합할 정도로 인력을 대폭 축소하고 서울지사와 지방지사 12곳을 폐쇄했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2년여 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회사는 정상궤도로 돌아섰다.

제9대 대표이사에 KBS 울산방송국장 등을 역임한 신원호씨가 취임했다. 내실화를 통한 사세확장이 거듭됐다. 2003년 3월25일 창립한 전국지방신문협의회에 가입했고, 1990년 2월 가입했다가 2000년 경영난으로 탈퇴했던 한국ABC협회에도 재가입(2004.4.1)했다. 이어 2006년 10월10일 창립한 지역신문협회에도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독자들과의 쌍방향 제작을 지향하면서 독자위원회(2003.6), 경상사진동우회(2005.3), 청소년기자단(2006.1)을 차례로 발족시켰다. 또한 전국적으로 본사의 위상이 높아져 신원호 대표이사는 지역신문에선 극소수인 신문윤리위원회 이사(2004.2), 한국신문협회 이사(2006.3)에 선임됐다.

대주주인 류준걸 회장이 사업의 어려움을 겪게 됨에 따라 지분을 인수한 이한영 현 대표이사가 상임 감사를 거쳐 부사장을 맡게 되면서 회사운영상 안정성은 더욱 강화됐다. 자칫 어려움에 처할 뻔했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회사 경영이 단단해짐에 따라 대외적 신인도와 신뢰도도 높아지면서 참여정부가 지역 언론사의 발전을 위해 만든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2006년)됐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우선지원대상에는 이후 올해까지 4년 연속 선정되고 있는데 울산지역에서는 유일하다. 또한 신문협회,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 크고 작은 언론단체에 가입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지역에선 유일하다. 한마디로 지역대표언론으로서 한치의 부끄럼도 없는 위상을 유지하면서 전국 각 지방의 유력 신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지면도 4개면을 늘여 20면(2006.3.6)으로 증면하고, 이어 18주년 창간기념일인 5월15일부터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푸른색의 굵은 띠를 사용하던 제호를 버리고 제자는 그대로 사용하되 흰색 바탕에 검정글씨로 바꾸었다. 10여년 만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경상일보에 대한 평가는 푸른 띠로 인한 독창성을 포기한 것은 아쉬우나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라는 평가를 얻었다.

사원과 가족들의 복지를 위한 사내 복지기금도 만들었다. 또한 사내 이달의 기자상을 제정하는 등 전 구성원들의 의욕을 향상시키는 각종 제도를 정착시켜 나감으로써 더욱 단단한 신문사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2008년 3월27일 이한영 제10대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했고, 신원호 전임 사장은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 1997년 7월15일 전면 가로쓰기 한글전용 제호디자인 변경.
◆ 전국적 신인도·신뢰도

대주주가 직접 경영에 참여한 것은 본사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주인의식을 갖고 더 발전된 신문사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본사는 울산지역 신문사의 맏형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자 창간 19주년을 맞아 ‘지역 사회와 언론’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경영의 내실화를 위해 조직도 개편했다. 편집, 광고사업, 판매, 총무로 나눠져 있던 4국을 3국으로 통합(2008.10)한 뒤 다시 편집, 광고, 문화사업, 경영지원 등 4국으로 재편해 기획조정실, 논설위원실과 함께 2실 4국체제를 갖추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2008년 봄부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불안과 세계적 경기침체로 인해 예기치못한 경영의 어려움에 봉착하는 바람에 위기극복차 2008년 12월1일자로 토요일 신문발행을 중단, 주5일발행체제로 줄인 것이다.

◆ 임직원 각오

2009년 창간 20주년의 해가 밝았다. 경제난 속에서도 본사 전 임직원들은 오로지 오늘의 대외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20년, 200년 이상 울산시민들의 더 큰 사랑을 받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정도를 걷는 신문, 올곧은 신문으로서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정론직필과 울산발전을 위한 발걸음을 한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정명숙 문화사업국장 ulsan1@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