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대밭, 막연한 포괄적 의미
인간의 무간섭이 최상의 예의

▲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한반도의 대나무의 종류로는 크게 참대속, 이대속, 해장죽속, 조릿대속, 산죽속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참대’는 일명 ‘왕대’라는 것이고, ‘이대’는 전죽이다. 울산에는 일찍부터 ‘참대’와 ‘이대’가 자생하고 있었다. 대나무는 난대성 식물로 물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다. 대나무와 대나무 숲이 건강하려면 연간 1500~2000mm의 강우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태화강가를 따라 분포된 울산의 대숲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십리대밭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됐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언제부터 울산에 대나무가 자랐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포괄적 개념인 십리대밭이란 명칭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십리대밭이라는 말은 꼭 10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 만큼 길게 이어져 있다는 표현으로 풀이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박영일(대한노인회 울주군지회 범서읍분회 사무장)씨가 회고한 ‘나의 살던 고향, 범서 대리마을(경상일보 2009.4.20일자)’편에 의하면, ‘태화강 십리대밭의 시작점은 선바위 강당대밭에서 부터다. 지금 태화동에 있는 대밭을 옛사람들은 오산대밭으로 불렀고 그 대밭이 범서 선바위 강당대밭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강당대밭을 중심으로 겨울이면 떼까마귀가 날아오고 봄이면 두루미가 날아왔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전에도 강당대밭, 오산대밭 등 각 지역의 지명 혹은 마을 이름을 내세운 대밭으로 지칭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나무의 지하경(地下莖)은 지속적으로 번져 나아가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향후 ‘십오리 대밭’, ‘이십리 대밭’이라는 지칭으로 변천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향후에는 두루뭉술하고 막연한 포괄적 의미인 십리대밭보다는 강당대밭, 오산대밭 등의 명칭이 활용되었으면 한다. 정서도 담겨 있고, 지역을 찾을 수 있는 자연생태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울산의 십리대밭, 강당대밭은 언제 형성되었을까?

<세종실록지리지>(1454), <대동지지>(1864) 등에서는 ‘왕대(竹)’를, <신증동국여지승람>(1531), <여지도서>(1760), <임원십육지>(1842~1845) 등의 문헌에서는 ‘이대(箭竹)’의 분포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문헌상으로는 울산에 적어도 1454년 이전부터 자연종의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설왕설래하던 일제 강점기에 일본사람 혹은 어떤 사람이 인위적으로 태화강가에 대나무를 심었다는 인위적 조성(造成)설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대나무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태화강가를 생장 최적지로 삼았고, 수분을 적당히 함유한 사질토양은 대나무의 지하경이 빠르게 뻗어 나가는데 충족조건으로 도움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태화들 맹종죽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 크다.

경상일보는 ‘태화들 맹종죽 죽었나 살았나’(2008.5.21일자) 제하의 기사에서 ‘태화동 주민자치위가 범서읍 서사리에 자생하던 맹종죽 50여 그루를 태화들에 옮겨 심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2~3 그루가 누렇게 변하기 시작해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종이 다른 대나무를 인위적으로 이식시킨 결과다. 맹종죽이 서사에 있었으면 천수를 다하고 자손까지 볼 터인데 태화들에 이식되어 일부는 죽었음을 알 수 있다.

맹종죽은 서사리의 환경이 적합하고, 왕대는 오산의 환경이 적합하다. 오산대밭의 왕대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서사리의 맹종죽도 마찬가지다. 옮길 수 있는 것을 옮겨야 한다. 즉흥적·정서적 발상은 신중해야 된다. 이식된 맹종죽은 기존의 왕대와 우점을 위한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고, 결국 우점 종에 의하여 열점 종은 도태될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무간섭이 최상의 예의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십리대밭을 20리, 30리로 태화강을 따라 확장 조성하는 것과 서울 남산의 팔도소나무단지와 같은 브랜드화 사업은 자연생태계 중심에서 역행하는 인간 중심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있을 곳에 있는 것이 자연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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