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세상 이웃을 단골로 만들자

서로 믿고 양보하는 기풍으로

▲ 이승현 울산주류문화전략연구소 소장
친구 중에도 각별히 친한 친구가 있고, 직장동료 중에도 정감이 가는 동료가 있고, 이웃 중에도 유난히 정이 가는 이웃이 있듯이, 인생을 살아감에도 부담 없이 즐겨 찾게 되는 단골집은 있게 마련이다.

청년시절 빈대떡 한 장에다 시어빠진 김치 한 접시에 막걸리 잔을 들이키며 기염을 토하던 우리들이 즐겨 찾던 대포 집들은 거의가 특별한 실내 장식이라든가, 남다른 친절과 보너스가 없어도 그 당시 객기에 차 있던 젊은이들에게는 더 없이 편안한 장소였으며, 그들로 인해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외견상 호화롭지도 않았고, 실내장식도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시절을 떠난 지 이미 30여년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단골은 있다.

호주가도 못되고 주당은 더더욱 못되는 터라 분위기의 쾌적함과 집주인의 배려나 친절에 따라 찾게 되는 생맥주집, 설렁탕집, 돼지국밥집 등 구미에 맞게 끓이는 음식점, 자주 왕래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어 지인들을 만나기에 편리한 곳이다.

단골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다. 가정의 예를 보더라도 그 가정의 주부가 자주 찾는 식료품 가게가 있다. 많이 팔아 주면 얼마가량은 덤으로 주기도 하고, 바쁠 때는 전화 한 통화로 별로 값나가지 않는 물건도 배달해 주는 선심도 쓴다. 이것이 단골의 편리함이다.

단골을 맺게 되는 데는 우선 주인의 인상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니 주인을 택함에 있어서도 각기 다르지만, 나의 경우는 대함에 있어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좋다.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고, 나쁘게 말해 좀 허술한 구석도 있고, ‘나사’가 한 두군데 빠진 듯 해 보이는 사람이 좋다. 지나치게 친절하여 오히려 불편한 사람보다는 그저 무덤덤한 인상이 좋다는 것이다.

단골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우선 상대를 믿음으로 대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를 보이려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단골을 두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남을 믿으려 들지 않는 사람이다. 따라서 단골을 갖지 않는 사람보다는 단골을 두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정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찍이 지금처럼 정신적으로 황폐한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고 본다. 매사가 물질 위주의 가치체계 위에서 처리되고, 각박한 인심은 남을 항상 경쟁의 상대로만 의식하며, 이웃과의 교류도 끊은 채 지나친 피해의식과 자기방어만을 생각하며 한 치의 손해나 양보도 없이 살고자 하는 메마름만 팽배해 있음을 본다.

이러한 현실 상황 속에서 가까운 이웃을 단골로 둔다는 것은 삶의 여정에 있어 윤활유가 되고,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을 맞게 되기도 하며, 인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속일 수 없으며, 속아지지도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어떤 가식이나 위장이 진실의 이름을 빌려 나타난다면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거짓투성이의 삶 속에서도 빛나는 것과 가릴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실이다. 진실이 수수(授受)되는 사회, 아무리 주어진 현실이 바빠도 하루에 한번쯤은 하늘을 쳐다보며 사는 여유, 단골에게만이라도 거짓 장사를 하지 않는 상도의(商道義)가 부활되어야 한다.

자기네 음식점만을 찾아주는 단골에 대해서는 항상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단골을 두고 사는 사회, 믿고 살 수 있는 사회, 내가 먼저 양보하는 사회 기풍의 조성이야말로 얄팍한 상술에서 벗어나 자기 사업을 꾸준히 성장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승현 울산주류문화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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