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봄 관악산을 함께 다녀 온 신을댁 팔남매들.
어릴 적 한 이불을 덮고 자라던 형제자매들일지라도, 성년이 된 뒤에는 각 자의 생활이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 제각각 가정을 이루고 직장따라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관계는 더욱 소원해 질 수 밖에 없다. 설날이나 추석, 자녀의 결혼식 때 한번씩 얼굴을 마주할 뿐 그 이상의 교류는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여의치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련한 고향집 그 시절이 떠오르기 마련. 이러한 아쉬움을 인터넷 가족카페로 해결한 가족들이 있다. 가족간 대화 단절을 불러 온다는 인터넷이 오히려 멀리 떨어 진 가족들을 다시 한 자리에 모으는 사랑방으로 변모한 것. 온라인의 잇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울산지역 두 가족을 만나본다.

▲ ‘신을댁 8남매’ 카페 초기 화면
◆추억의 화수분 ‘신을댁 팔남매’

‘신을댁 팔남매’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마련 된 카페 이름이다. 카페 회원은 홍남희(70·남구 야음동)씨를 비롯해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 팔남매 부부와 그 자녀들까지 모두 카페를 드나들며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팔남매 중 장녀인 홍씨는 “‘신을댁’은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택호”라면서 “젊은 시절에는 사느라고 바빠서 서로 자주 못만났고, 행사가 있어도 모든 형제자매가 모이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매일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고 즐거워했다.서울 사는 둘째딸 홍경희(60), 부산에 사는 셋째딸 홍태희(58)씨는 매일 아침 카페에 들러 인삿말을 남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좋은 글귀나 풍경사진을 올릴 때도 있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손자들 사진을 올린다”면서 “형제자매들도 반갑지만, 조카들이 난데없이 안부를 물어올 때가 가장 반갑다”고 입을 모았다.

팔남매 키운 엄마의 택호 딴 카페

안부 묻고 알콩달콩 사는 얘기나눠

여행사진 올려놓으면 ‘무한 댓글’

카페지기는 ‘신을댁’의 막내 사위 박해룡(51·중구 태화동)씨다. 산악회를 운영하며 갈고닦은 카페운영 노하우를 가족카페에 그대로 적용한 것. 박씨는 “팔남매나 되는 처가댁 형제자매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가 쉽지않으니 카페라도 열어보자고 시도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괜찮다”면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이들도 마치 이웃에 살고 있는 것처럼 서로의 안부나 생활을 지켜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경주에 사는 ‘신을댁’ 맏며느리 최무연(61)씨는 “형제자매들 대부분이 손자손녀를 키우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됐지만, 카페를 통해 주고받는 어린 시절의 추억담은 아무리 곱씹어도 마르지않는 화수분과 같다”면서 “인터넷을 조금만 알게 된다면, 가족카페부터 개설하라고 주변에 권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카페개설이 계기가 되어 이들 형제자매는 지난 봄 서울 및 강화도로, 설악산으로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지에서의 즐거웠던 장면들이 자료실 사진방에 하나씩 게재되자 팔남매들은 또다시 ‘무한댓글’을 달면서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 ‘건천탑골’ 카페 초기 화면
◆온라인 사랑방 ‘건천탑골’

추억담이 많은 중·장년층만 가족카페를 개설하는 것은 아니다. 30~40대 젊은 부부들 중에도 온라인 카페를 통해 서로의 정을 쌓는 이들이 있다.

다음 카페명 ‘건천탑골’에는 14쌍의 부부가 회원으로 활동한다. ‘건천탑골’은 이들이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외갓집이 있던 곳이다. 친형제자매 뿐만 아니라 사촌지간으로 이뤄 진 회원들은 일년에 한번씩 만남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친교와 우애를 다질 수가 없다며 4년여 전 카페를 개설, 지금까지 가족 간 대화의 창구로 활용해 왔다. 미혼이었던 회원들이 그 동안 차례로 가정을 이뤘고, 출산으로 가족 수도 늘어났다.

형제자매에 사촌 부부 14쌍 의기투합

함께 뛰놀던 외갓집 있던 곳 이름지어

아이들 커 가는 정보 교환·우애 다져

김경환(48·중구 약사동)씨는 “시대가 바뀌면서 사촌지간의 우애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우리 카페만은 예외”라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 소식과 부모님들의 건강 이야기, 직장생활의 어려움 등 다양한 주제가 카페대화방을 통해 오고간다”고 말했다.

남편을 따라 자연스럽게 카페회원이 된 조영정(32·울주군 범서읍)씨는 “차례상 및 생신상 등 시댁 행사에 필요한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개월 수가 비슷한 자녀를 둔 동서들과도 자주 연락하게 된다”면서 “카페를 통해 늘 소식을 주고 받으므로, 오랜만에 만나도 늘 만났던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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