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열풍이 전 국민을 몸살나게 하고 있다. 3주 연속 당첨자가 없어 이월된 당첨금은 400억원이 넘었고, 이는 우리나라 복권사상 최고의 금액이라 한다.

 한해를 차분히 계획하고 지난해의 실수를 거울삼아 삶의 자세를 다듬어야 할 정초에도 복권의 열풍으로 오히려 더 들뜬 모습이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한 탕 대박의 행운을 꿈꾸는 것은 자칫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행운이 따르면 단번에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마력을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다. 로또 복권의 당첨률은 2천335만분의 1이라 한다. 벼락을 맞아서 죽을 확률보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보다도 몇 배, 혹은 몇십 배, 더 어려운 경우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 일에 빠져들고 있다.

 딴은 매력적이긴 하다. 단번에 인생이, 황금마차를 탄 신데렐라 같이 바뀌는데야 그 누군들 바위처럼 굳건할 수 있으랴.

 빈자와 부자의 격차는 상상을 초월하고, 아무리 기어올라도 모래산처럼 무너져내리는 현실에서 복권은 확실히 사람을 신나게 하는 매력이 있고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내 어머니가 젊었던 시절에도 복권이 있었다. 그때 최고 당첨금은 700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닌 일주일에 한 번씩 복권을 사셨다. 일주일 동안의 행복. 어머니는 그 복권을 들여다보며 주문처럼 중얼거리셨다.

 "이 복권 맞으면 우리 딸들 시집도 보내고, 우리 아들 대학도 보내고, 우리 가족 여행도 한 번 가야지."

 "우리"를 앞세워 바랐던 그 소박한 소원, 어머니의 소망이 담겼던 어머니의 복권은, 그러나 단 한번도 맞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번번이 복권을 사시는 어머니를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나는 복권에 대한 생각도 부정적이었다.

 불로소득. 내 삶도 불로소득으로 편하게 살 운명은 아닌 것 같아 아예 복권을 산다거나 횡재수에 기대는 일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슬몃, 호기심도 생기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던 삶에서 복권은 어머니가 택한 판도라의 상자였다.

 일주일을 기대에 부풀어 사는 소시민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로또 열풍조차도 차라리 애교스럽다. 다만, 그 액수가 너무도 엄청나서 "애교"라는 말이 무색하기는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소시민이 소망하는 행운은 차라리 눈물겹지 않은가. 과열을 지나쳐 사행성 조장, 한탕주의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보면 조금 걱정되지 않는 바도 아니나, 그렇다고 있는 돈 다 털어서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오히려 사행심을 부추기는 일임을 알면서도 복권을 만든 시행처가 더 문제일 것이다.

 땅거미가 질 즈음, 지친 하루의 일상을 접고 포장마차에서 한잔 술 걸친 후에, 조금은 배포가 커져 복권 사 들고 자신있게 집으로 들어서는 가장들을 상상해 보라.

 "여보, 조금만 기다려 봐. 복권이 터지면 우리는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구."

 삶이 주는 허망 속에서 빈자의 꿈은 소박하며 슬프다. 우리의 경제사정이 전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하게 윤택해졌다지만 아직도 소시민이 갖는 상대적 빈곤은 여전하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돈 없이는 그 아무 것에도 당당해질 수 없다. 특별히 잘난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이 시대의 평균치 가난을 끼고 사는 그들이 투자한 몇 천 원에 대한 기대를 어찌 사행성 조장이라고만 매도할 것인가. 다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당첨금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의 제동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복권을 사는 사람들, 그들은 판도라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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