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 맑은 정신으로 잠에서 깨어 났던 하루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일어나 움직이는 모든 동작이 기계적이었을 텐데 그날은 갑자기 떠오른 단어 하나로 인해 잠시 누워서 사색에 잠겼다.

 ‘幸福(행복)’이라는 평소 자주 사용하던 단어였는데 뜻이 정확히 기억 나지 않아 서재에 있는 한글 사전 속에서 그 뜻을 찾아 보았다. 사전 속의 ‘행복’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 사람의 운수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거나 풍족한 삶을 누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 해석되어 있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나니 ‘나는 행복한가?’ ‘나 이외의 울산시민은 행복한가? 하는 평소 답지 않은 궁금증이 다시 둥우리를 튼다. 그래서 사전적인 의미에서 벋어나 내가 행복했던 적은 언제였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가 행복했었다고 하며, 나이가 좀 더 든 사람들은 젊은 시절이 행복했다고 회고하는 것을 종종 보아 왔었다. 知天命(지천명)의 나이를 살아온 내 기억에도 대다수가 어제가 오늘보다 행복했었다는 기억과 더불어 왜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어린 시절,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 부족 했었는데,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이 지난 후에 행복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한 언론에 게재되었던 행복도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런던 정경대의 연구 조사팀이 전 세계 54개국 국민이 느끼는 행복도 조사 결과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 등이 1,2,3위를 차지하고, 경제 대국들인 스위스, 독일, 캐나다, 일본, 미국 등은 41위 에서 46위로 하위권에 머물렀고, 우리나라는 23위라는 조사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사람의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가 보장해 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질적 자원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린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요즈음은 풍부하지만 당시에는 과자보다는 인근 들판에 널려있던 칡과 삘기라 불리는 풀의 새순, 밭에 심어놓은 무우가 더 흔했고, 가게에서 파는 과일 보다는 벌판에 널려있던 산딸기가 더 손 쉬웠었다.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폼을 재는 것 보다 입고 있던 속옷차림으로 뛰어 들 수 있었던 태화강과 속옷차림으로 거닐 수 있었던 모래 사장이 더 좋았었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중 군대이야기를 곧 잘 하는 남자들은 제대를 앞두고 다시는 이 부대를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큰소리 치고는 TV에 방영되는 군 생활 프로를 보며 자녀에게 당시에 나는 참 행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참다운 행복은 과거가 아니라 회고할 가치가 있는 과거가 있을 때, 그 과거가 더 힘겨웠을 때, 먼 훗날 그 때가 행복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생각의 꼬리를 잡고 보니 참 재미있다. 선진국일수록 행복도는 떨어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된 나라일수록 자살률이 높고, 교육을 많이 받고 경제적 여유가 많을수록 이혼하는 가정이 많아진다. 참으로 인생은 요지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자신의 만족도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족이라는 그릇이 크면 좀처럼 채워지지 않을 것이고, 그릇이 작으면 그만큼 쉽게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릇을 채울 때도 한 소설의 표현처럼 가득 채워 넘치기 보다는 적당한 양을 채워 넘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간혹 나는 불행하다고 주장하는 한 초등학생을 소재로 한 유머가 생각난다. 꼬마의 가정부는 집도 없고, 정원사는 차도 없어 불행하다는 내용의 유머인데, 우리가 이 꼬마처럼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 遇(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파랑새를 찾아서 다니는 동화가 생각나게 한 하루를 보내며 오늘 하루를 혼자만의 행복을 즐기기 보다는 작은 행복이라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위한 하루를 만들어야 겠다고 신년 각오를 새롭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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