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이제는 당당한 울산인 -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맏언니 심은하씨 -

베트남 대학서 한국·영어 전공
IMF때 남편과 빈손으로 울산행
초기정착단계 힘들었던 기억에
결혼이주여성·노동자 해결사로
수준급 영어실력 교사로도 활약

▲ 베트남 출신 심은하씨가 학원에서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심은하(37)씨를 만났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그가 아니다.
울산에 완전히 정착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이다.
키 150㎝에 몸무게 40㎏도 채 안되는 갸냘픈 모습이지만, 전통의상 아오자이가 제법 잘 어울릴 것 같다.
베트남 이름은 팜·티·투·하.팜은 성(姓)을, 티는 여성, 투는 가을, 하는 은하수를 뜻한다.
‘가을 밤 은하수’다.
그래서 한국 이름도 남편의 성을 따 심은하로 했단다.
심은하씨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이자, 울산지역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 여성과 이주노동자 2000여명의 맏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나, 한국어 전공한 여잡니다”

18살에 고향 베트남 하노이 미싱공장에서 남편을 만났다.

이 업체 사장 심대섭(46)씨 밑에서 수출과 수입 관련 영어통역 업무를 하다 눈이 맞았다고 했다.

사랑은 해를 거듭할수록 무르익었고, 심씨가 22살 되던 해인 1994년 결혼했다. 이듬해 금쪽 같은 아들 중석(15)이도 낳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친정 식구들이 있는 베트남에서 살아 행복했다. 자상하기로 소문 난 남편이 대학도 보내줬다. 베트남 인문과학사회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 고교 시절부터 능통했고, 직장에서도 통역 및 번역 일을 했기에 영어를 부전공했다.

한국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베트남 사람들이 워낙 한국을 잘 살고 좋은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고, 남편의 나라여서 한국어를 공부했다”며 웃었다.

그래서 다른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보다 한국어를 빨리 익혔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었다고 한다. 실제 심씨는 또박또박하고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또 영어도 정통 영국식 발음 그대로였다.

◇“10년 전엔 못살겠더라고요”

IMF는 심씨 가족에게도 상처를 줬다. 잘 돌아가기만 하던 미싱공장이 한 방에 폭삭 주저앉았다. 부부는 빈털터리가 됐다.

1998년 남편이 먼저 울산으로 왔다. 제관 용접공으로 취직했다. 넋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심씨도 중석이를 안고 울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월셋방 1칸 겨우 얻어 세 식구가 살았는데, 힘이 많이 들었죠.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한국어를 전공하긴 했지만,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울산 사투리가 어렵기만 했다.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며 무시하고 차별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돈에 팔려 왔다는 오해도 했다.

특히 결혼이주 여성을 지원하는 기관이 아예 없어서 어려움을 호소할 곳도 없었다. 그때가 악몽 같았다고 했다.

“이유 없이 사람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취업할 곳이 없었어요. 악몽 같은 삶이었어요.”

◇“이제는 영어선생님에다 해결사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심씨에게는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2004년 그 친구 덕분에 유치원 영어강사로 취업할 수 있었다. 최고 등급의 영어 실력을 알아본 것이다.

지금은 보습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경찰서와 법원 등에서 통역 및 번역 일도 해주고 있다.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아예 발벗고 나선다. 울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4년간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쳤고, 지역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한글과 한국문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또 지역 초등학생에게 베트남 문화를 소개하는 다문화강사 활동도 했고, 2년째 울산시 외국인 시정 모니터요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상담 등 관련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야간 및 새벽시간대는 아예 심씨가 도맡아 책임지고 있다.

체류 연장과 관련한 문의에서부터 남편 및 시부모와의 갈등 상담, 병원 응급실 통역, 이주노동자의 처우문제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다 경찰서에서는 베트남 사람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피해를 입은 경우 밤이고 새벽이고 통역 도움을 요청해 온다.

한 마디로 울산지역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의 맏언니이고, 베트남 출신 사람들의 해결사인 셈이다.

실제 심씨와 인터뷰하는 동안 10여분마다 한 번씩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2대의 휴대전화 중 1대는 아예 꺼버렸고, 쉴새 없이 울려대는 1대에 등록된 전화번호가 900여개에 달했다.

그러나 심씨는 결혼이주 여성들에 대한 각종 정책들이 현실적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다문화사회, 다문화가족 말만 외치는거죠. 결혼이민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생각지 않고 정책을 펼치니 저같은 사람이 나서는 겁니다. 스트레스에 건강까지 해쳤지만 지원이 온전해 질 때까지는 제가 감당할 겁니다.”

◇“결혼이주 여성 이해교육 절실”

2005년 귀화해 한국사람, 울산사람 다 됐다. 남편은 그렇지 않지만, 한국 남자 대부분이 가부장적이어서 화가 난단다. 항상 남녀가 평등한 베트남과 너무 차이가 나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어 교육’으로 국한된 천편일률적인 지원책은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남편과 가족들에게 베트남의 문화와 사정을 제대로 이해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2가지 서로 다른 문화를 한꺼번에 받아들여야 하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강이 허락한다며 모국 출신 결혼이주 여성들을 위한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심씨. 자신과 같이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 사정도 잘아는 후배들을 많이 육성해, 또다른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글=배준수기자 newsman@k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