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이제는 당당한 울산인 - ‘내조의 여왕’ 태호영씨 -

필리핀 ‘또순이아가씨’ 한국서도 생계 책임진 억척주부로
힘든 살림살이에도 남편 학업 수발 전문자격 갖춘 학사로
원어민강사 양성과정 마치면 초등 영어교사 새삶 기대
▲ 필리핀 결혼이주 여성 태호영씨가 남편 전민석씨, 딸 하연이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부부는 눈물을 흘렸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혹독하게 이겨낸 기쁨의 눈물이다. 필리핀 결혼이주 여성 태호영(42)씨와 전민석(49)씨 부부를 만났다. 지난 1999년 처음 만나 1년 뒤 부부의 연을 맺은 그들은 이제는 감히 ‘행복’이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꺼낼 수 있단다. 사업 실패로 폐인처럼 살았던 남편은 태씨를 만나 어엿한 직장인이 됐고, 중졸 학력에서 학사 학위 2개를 가진 전문 지식인으로 바뀌었다. 태호영씨의 내조 덕분이다. 그래서 태씨는 ‘내조의 여왕’, ‘복덩이’로 불린다.

◇너는 내운명

필리핀 민다나오 삼보안가의 가난한 집 1남7녀 중 장녀로 태어난 태씨는 전문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망망대해 같은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12년을 뼈빠지게 일했다.

영어강사를 해서 번 돈으로 동생 5명을 대학까지 졸업시켰고, 부모님에게는 근사한 집과 4만9587㎡(1만5000평)의 땅을 사드렸다. 자신에게 쓴 돈은 실반지 하나였지만, 가족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참고 또 참았다.

중학교 졸업 후 섬유회사 기술자로 일하던 태씨의 남편 전씨는 오른손이 기계에 말려 들어가는 산업재해를 당해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이 됐다. 섬유회사를 나와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다 돈을 벌었지만, 욕심을 내 확장을 했다가 모두 날려버렸다.

이후 근근히 직장생활을 하며 팔순 노모를 모셨지만,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냈다.

당시 어머니는 “7남매 중 막내아들 결혼하는 모습 보고 죽는 게 소원이다”며 전씨의 결혼을 재촉했다. 마침 한 종교단체에서 전씨에게 필리핀 여성을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했고, 1999년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홍콩에서 그 여성을 만났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귀국을 앞두고 종교단체에서 생활력 강하고 착한 여성이 있다고 다시 만남을 주선했다. 클라리사 타구리노 소꼬(Clarissa Tagulino Socco), 지금의 태호영씨다.

외롭고 힘든 처지가 매 한 가지였던 두 사람은 그렇게 인연을 맺었고, 편지로 사랑을 키워나갔다. 전씨는 “첫 눈에 반한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으나 생활력 강하고 착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처음 소개받은 여자 대신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아마도 운명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둘이 하나돼 이룬 행복

2000년 2월 태씨는 전씨와의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왔다. 그런데 결혼에 필요한 출생 신고서가 잘못돼 혼인신고가 안됐다.

▲ 필리핀 결혼이주 여성 태호영씨가 남편 전민석씨와 함께 학위증과 자격증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태씨와 함께 40여일을 필리핀에서 머물며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었고, 그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태씨는 손이 불편한 남편, 팔순 시어머니와 함께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남편이 자신과의 결혼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둬 생계가 막막했다. 그야말로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생활력 강하고 지혜로운 태씨는 당장의 어려움보다 미래를 먼저 고려했고, 실업자 남편에게 결단을 요구했다.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고, 장애가 있어도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주택관리사 자격증에 도전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웃의 소개로 울주군 언양읍 한 유치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며 주방일과 청소일까지 도맡았다.

태씨가 매월 40만원을 벌어 20만원은 남편의 학원비로, 나머지 20만원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수 년간 매월 쌀 한 포대, 5000원짜리 돼지머리와 돼지내장, 김치로 먹거리를 해결했다.

남편도 술과 담배를 끊고 악착같이 공부해 그해 12월 꿈에도 그리던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2개월 뒤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당당히 취업했다.

태씨는 “남편이 주택관리사에 합격하던 날 한 없이 울었어요. 그리고 큰 선물을 가져다 준 남편이 너무 고마워 며칠밤을 세우며 기뻐했지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토록 원했던 임신은 2번의 유산으로 이어졌다. 유치원 교사라고는 하지만 막노동에 가까웠던 생활에다 살기 위해 공장일, 농삿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몸이 성치 못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지금 8살이 된 딸 하연이를 가질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자식이 생기자 전씨는 보다 더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 하연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중단했던 학업에 다시 도전했다.

2003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데 이어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4년 만에 학위를 땄고, 다시 평소 관심이 많았던 유기농업을 공부하기 위해 2007년 환경보건학과에 핀입해 지난달 두 번째 학사 학위를 받았다.

유기농업산업기사 자격증은 이미 땄고, 현재 유기농업기사 자격증 취득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동안 어렵게 모은 돈으로 집도 마련했고, 향후 전문적인 유기농산물 생산을 위한 농장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살고 있다.

전씨는 “아내가 우리집 복덩이죠. 이 사람 안 만났으면 아직도 폐인처럼 살았을 겁니다”라고 아내를 추켜세우자, 태씨는 “오늘의 행복은 둘이 하나가 돼 가능한 일이었어요. 묵묵히 노력해 준 남편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초 울산의 한 방송국 후원으로 한국에서 치르지 못한 결혼식을 했고, 일본으로 신혼여행도 다녀온 덕분에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하다는 이 부부는 지금 이 행복이 영원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특히 태씨는 지금의 행복이 있기까지 도와준, 희망을 꿈꾸고 실현하게 해 준 울산과 한국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오는 11월16일 울산여성인력개발센터 영어 원어민강사 양성과정을 마친 뒤 초등학교 방과후 교사로 취업하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지역 아이들에게 쏟아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배준수기자 newsman@ksilbo.co.kr 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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