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발 고른 미소로

 봄이 피는 2월에

 쌀눈 같은 가지마다 매화꽃이네

 

 텅 빈 가마 얹혀 있는

 사랑 뜰 앞에

 매화꽃 피고 있네

 

 검버섯 돋아난 기왓골마다

 세월은 아득하고

 담 밑에 쌓인 눈은

 봄이 시리네.

 

 (까치소리, 울산저널, 1992)

 

 고향집 고가(古家)를 지키고 사는 시인의 소회(所懷)를 읽어보자. 눈에 삼삼하고 손에 잡힐 듯이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무엇이 있다. 어느새 입춘이 지나고 우수절기가 낼모레. 잔설을 비집고 새싹이 눈뜨는 소리가 들려올 듯하여 귀를 세워보는 때다. 매화꽃 향기가 우러나는 사랑채에 딸린 헛간에는 어머님이 시집 올 때 타고 왔을 가마가 아직도 얹혀 있고, 세월의 검버섯이 내력처럼 덮여 있는 기왓골에도 봄이 오고 있다. 200년 고가에도 봄이 오는데, 시인은 아득히 세월을 보고 있다. 강세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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