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출범과 때를 맞추어 울산·부산·경남의 "동남권"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여러 논의들 가운데서도 산업자원부의 소위 "동남권 산업 클러스터 구축계획(안)"에 대해서는 동남권의 산업과 정책분야 관계자들의 불만이 들려오고 있다.

 주로 울산과 경남의 관계자들에게서 들려오는 불만은 두 가지 정도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는 세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계획이 부산을 제외한 나머지 두 지역과는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인수위원회에 보고되었고, 향후 추진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계획의 내용이 세 지역의 산업 현실과 잠재력, 그리고 이미 결정되어 진행중인 정책들을 무시하고 특정지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울산과 경남에 이미 조성되어 있거나 현재 추진중인 기존의 자동차부품과 기계산업 기반을 무시하고 이들 산업을 부산으로 집중시키고자 하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왕에 추진중인 울산의 "오토밸리" 사업이나 경남의 "메카노21" 사업과의 일관성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남권 산업클러스터 구축계획(안)은 그 명분과는 다르게 오히려 중복투자와 비효율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동남권의 R&D기능을 부산에 집중시킨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 계획(안)이 가지는 문제점이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R&D시설은 그 기술의 내용이나 여건에 따라 나름의 적정입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별도의 검토가 생략된 채 대도시인 부산에 모두 모으려는 계획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산의 어느 대학 교수들이 마련했다는 이 계획의 원안이 거의 그대로 중앙정부 부처의 계획(안)으로 인수위원회에 보고되기까지의 뒷얘기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다. 어찌 보면 자기지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획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은 자유이고, 그 계획을 정부안으로 만드는 것은 "역량"의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그런 계획을 아무런 협의나 검증 절차 없이 정부안으로 발표한 중앙부처의 경솔함과 대담함에 적잖이 놀랐다.

 필자는 지금이라도 대통령 당선자가 말한 바대로, "지방의 기획력’을 발휘하여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모든’ 지역에 부여되기를 기대한다. 특정지역 인맥의 유무나 정치력의 경중에 따라 경제분야의 의사결정이 왜곡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동남권 세 지역의 산업적 잠재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기능과 역할분담의 기준에 대해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국가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중복투자 방지’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큰 원칙에 충실하면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동남권 세 지역의 자치단체와 연구자가 공히 참여하는 "동남권산업발전계획’같은 것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 계획에서는 "동남권’을 연구의 공간적 범위로 하여 산업적 잠재력과 발전가능성을 점검하고, 향후 산업배치와 적정기능의 분담, 그리고 특정시설의 입지 등을 "효율성 기준’에 입각하여 결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성격의 계획에 대한 필요성은 동남권 3개 시·도의 의뢰에 따라 필자가 공동연구책임자로 참여하여 작년 말 발표한 "동남경제권 잠재력분석과 공동발전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서 이미 제안된 바 있다. 거기에서는 동남경제권의 지역별 특화산업의 구조고도화를 위한 공동시책은 물론,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주거,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산업간 균형계획을 수립할 것도 제안하고 있다.

 "동남권’은 행정구역과는 별개로 실재하는 개념이다. 주민과 산업부문의 연관도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앞으로는 거의 모든 부문의 계획도 "동남권’ 전체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그 현실성이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다. 한 지역의 산업기반을 근거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키거나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제로섬(zero-sum)적인 사고나 계획이 아니라, "과학적’인 기준아래 각부문의 협력과 기능분담 방안을 모색하여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상생(win-win)의 계획을 마련하는데 "동남인‘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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