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러 가려 했었다. 떠나기 전, 전화를 넣었는데 그 쪽에서 어디 갈 곳이 있다면서 오지 말라고 하였다.

 "하긴 만난들 무슨 말을 하랴""

 그를 만나러 가는 일을 접은 데 대한 변명치고는 참 옹색했지만 오히려 맘 한쪽에서는 편안하지 않을 그 자리를 용케 피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잠시 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에 어른거렸다. 만나도 위로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정작 그가 떠나기 이틀 전에야 부랴부랴 간다고 했으니 그인들 내 얇은 마음을 읽지 못했을까.

 어린 시절, 그는 공부도 뛰어나게 잘 했고 예의범절 또한 반듯하였다. 부모의 말에 한번도 거역한 일이 없는 그는, 효부상을 받은 어머니에게도 효자였다. 그가 그 어렵다는 S대학교에 붙고 장학금까지 탔을 때는 곧 그 집안에서 판검사가 나올 거라고 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길이 어긋났을까. 그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고시는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내리 떨어졌다. 사람들은 시험 결과를 의심했다. 그즈음 어여뻐하던 누이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가겠다 했다. 어떤 가문의 사람이냐 하는 물음에 그녀는 의외의 말을 했다. 수녀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말릴 수 없는 결심이라는 걸 안 부모는 몹시 혼란스러워 했지만 곧 조용히 수락했다.

 그때쯤부터 그의 눈빛에 그늘과 슬픔이 깃들었을까. 그 즈음에 그를 한 번 보았다. 어린 시절의 그만 기억하다가, 제법 나이가 들고 인생의 그늘이 짙은 눈빛의 그를 보았다. 고시를 치는 것은 부모님의 희망이고 그 자신은 그 일에 별반 뜻이 없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대학을 선택할 때 그가 사실 신학대학을 가고 싶어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신심이 두터운 그의 부모였지만 하나 있는 아들을 신부가 되라고 선뜻 허락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절충안으로 일단은 S대에 진학을 하고 그 후에도 네 뜻이 그러하면 그때 가서 진로를 바꾸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누이가 수녀의 길을 택하고 말았으니 그는 이미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었다.

 집안의 대를 끊을 수는 없다는 부모 세대의 바람을 그가 져버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후로도 번번이 고시는 낙방이었다. 어느새 그의 나이 서른을 넘고 대학 동기들은 "빛나는 인생"의 제 자리 찾기를 착실히 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평범하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제 자리를 찾았으면 싶었다. 그런 일상적인 바람은 강 건너 등불처럼 아득한 채 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하는 말은 "그 녀석이 기어코 결심을 했어"였다. 나는 이제라도 제 길을 찾겠다고 나선 그가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고 그가 그토록 원하는 길이었다면 진작에 놓아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람마다 정말로 제 갈 길이 따로 있는 거라면 지금에라도 제 길을 찾아 나선 그를 다행스러워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길로 들어서려면 8년을 더 공부해야 한단다. 8년" 그러면 그의 나이가 몇인가. 그것을 감내하고도 하고 싶은 일".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기 전날, 그가 목을 놓아 울더라 했다. 부모의 뜻을 끝내 저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음에 그 불효를 씻지 못해 그렇게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어하는 40대 가장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연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가". 험한 세상살이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 문득 되돌아보며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그들의 행로를 바꾸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가 택한 길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우러난 선택임을 믿으며 허약하고 지친 영혼들을 위해 보다 큰사랑을 실천하는 수도자로 거듭나기를, 마음 속으로 빈다.

 인생 행로를 생각하며 바라본 하늘에, 별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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