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던 길 가장자리에 파릇한 쑥이 고개를 내밀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는 것이 우수(雨水)가 지나면서 봄기운이 완연해 진 것 같다. 겨울이면 사람들은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 계절은 봄이 된 듯하지만 마음의 계절은 겨울 같다. SK그룹 주식 부당거래사건, 미국과 이라크 전쟁소식, 북한의 핵 문제 등만해도 추위를 느끼기에도 충분한데 대구 지하철 참사 소식은 마음속에 삭풍(朔風)을 불어 넣는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나 북한 핵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SK 그룹 주식 부당거래사건은 재벌을 계속 지배하려는 일부 기업가(企業家)의 욕심이 전제된 사건으로도 볼 수 있지만 최근 발생한 대구 지하철 사고는 너무나 어이 없고 가슴아픈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지금까지 보도된 바를 종합해 보면 한 장애자의 사회적 불만이 표출된 행동으로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장애가 있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경우 사회에 불만을 가진다는 것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비장애자가 장애자로 생활한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평소 불편을 모르고 지내다가 갑자기 다가온 장애는 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용의자와 인접해 사는 주민의 이야기가 더 크게 들린다. 평소 붙임성이 좋아 동네 모임에도 잘 나오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신체 장애로 인해 가정의 화목이 깨어지고 돌출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 장애자가 장애를 당하면 육체적인 고통이 정신적인 고통으로 바뀌고, 정신적인 고통은 가족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돌출행동으로 이루어 진다는 등식은 비 장애자라면 누구나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장애자의 날이 되면 비장애자는 흰 지팡이에 의존해 눈을 가리고 걸어도 보고, 휠체어에 앉아 높은 문턱이나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날 하루동안 장애를 체험해 본 비장애인의 주장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장애자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면 비장애자들의 일상적인 사고가 얼마나 경직되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한 국가의 복지 수준을 가름하는 잣대 가운데 장애자에 대한 복지정책이 있다. 택시 운전을 하며 적정 소득창출을 통해 노동의 기쁨을 만끽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택시 운전을 할 수 없게 될 때, 그 사람은 장애 치료를 위한 비용과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은 이루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 중 장애자에 대한 복지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장애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아직도 부족하다. 복지 혜택을 보기 위해서 구비해야 할 요건도 까다롭고 자격요건 또한 경직되어 실제적인 혜택을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비장애자에서 장애자로 바뀐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의견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내가 갑자기 장애를 당한다면 하는 입장에서 접근해 보면 사회적으로 더 많은 배려를 할 수 있고, 각종 제도도 더 쉽게 수혜가 가능하도록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이후 대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지하철 탑승자가 위험한 물건을 소지했는지 감시하자는 의견, 지하철의 소방설비 등 안전시설을 강화하자는 의견, 이 참에 완전히 불연재(不燃材)를 사용하자는 의견 등 다양하다. 제기된 대안 전부 다 수용하면 더욱 안전해 지겠지만 수용하자면 인적, 물적 자원이 엄청나게 투자되어야 하고, 이로 인해 원가 상승 압박으로 경쟁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법 중 하나는 전 국민의 마음속에 봄기운을 불어 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가정이 평온할 수 있도록 소외된 계층과 특히 장애자에 대해 동정이 아닌 따스한 배려를 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프로그램에 장애자 이해 프로그램 가동을 제안해 본다. 그리고 사회 복지 시스템이 더 쉽게 적용될 수 있도록 개선이 된다면 계절의 봄과 더불어 마음속의 봄이 더 일찍 찾아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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