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란, 그들이 없었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는 우스개를 읽은 적이 있다. 이 땅에 살면서, "참 맞는 말이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보는 우리나라의 정치발전 과정은, 빈곤의 시대에는 개발독재가 있었고, 5공과 6공을 거치면서 민주화로의 급격한 이행이 가져올 충격이 완화되었으며, 문민정부에서는 지방자치 등 민주화가 시작되었고, 국민의 정부에 이르러 통일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당시의 시대정신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가 "합리적"인 국민에 의해 선택되어 그 시대가 요구하는 "큰 숙제"들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그들의 논의 방식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를 선택한 국민들은 어떤 "큰 숙제"의 해결을 기대하며 또한번의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일까? 노무현 정부를 선택한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노무현 정부의 등장이 다수 국민들의 "짜증"과 "부끄러움" 때문은 아닐까?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되어 온 정치, "이해하지 못할 기준"에 따른 편가르기와 소외, 그리고 차별이 일상으로 자행되고 탈법과 반칙을 통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혐오가, 그런 나라에 사는 짜증과 부끄러움이 이번 선거에 반영되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이런 정치와 사회에 익숙해서 그것이 자연스러웠던 사람들과 그것이 못견디게 부끄러웠던 사람들 간의 대결이 이번 선거에서 벌어졌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치로 인해 짜증나지 않고 부끄럽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경제, 외교, 국방 등 국정운영의 중요 분야에서 경륜이나 경험, 혹은 눈에 띄는 비전이나 정책으로 국민들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었고, 또 국민들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후보들의 출신지역이나 나이가 선택의 기준이었던 것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필자의 추론처럼 국민들의 "짜증"과 "부끄러움"이 노무현 정부 출범의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노무현 정부가 부여받은 "큰 숙제"는 반칙으로 특권을 누려온 기득권의 청산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 싶다. 사실 선거과정에서 정치분야의 최대 이슈도 "낡은 정치의 청산"이었다. 그리고 당시 국민들도 낡은 정치를 "국민을 짜증스럽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정치"라고 이해하고, 낡은 정치인을 "낡은 정치를 주로 하는 정치인"으로 알아들었을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에 비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무거운 숙제를 받아놓은 것이 분명하다. 이 숙제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또 배타적 기득권을 독점한 세력의 저항 혹은 반격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숙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낡은 정치와 낡은 정치인을 골라내는 "기준"이 필요하고 그것들을 청산할 수 있는 "무기"와 "전략" 또한 필요할 듯 싶다. 물론 국민의 판단이 가장 공정한 기준이고 국민의 선택이 가장 강한 무기이자 가장 정교한 전략이 될 것이지만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세대간 지지후보가 갈리고 지역에 따라서는 지지도의 편차도 커서 많은 이들이 우려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대간 지지후보의 차이가 국민과 호흡하는 생활정치로의 발전을 가속시킬 것이고, 지역별 지지도의 편차가 과거에 비해 심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자발적인 국민참여와 정책논쟁의 확산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기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십 수년 전에 읽었던 우스개와는 반대로, 우리의 정치가 "쓸모 있는 일"이 되고 우리의 정치인들이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낡은 정치의 청산"을 전면에 내세운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다.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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