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신도로부터 참 반가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스님, 제가 다니는 절에서 "지수화풍(地水火風) 기원제"를 지냈어요. 말 그대로 땅과 물 불 바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그로 인한 재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리는 기원제였거든요. 처음, 주지 스님으로부터 지수화풍 기원제라는 말씀을 들었을 땐 참 생소하게 느껴지던데 막상 진지하게 제(濟)를 올리다 보니 저희들 모두가 지수화풍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산 것이 부끄러워지더군요."

 돌이켜 보니 소납 역시 그런 대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는 생각에 짐짓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내가 머무는 대운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나 사철 무성함을 자랑하는 수목들로 채워져 있고, 그런 수목들에게 위안이라도 받으려는 듯 세인들은 계절 따라 등산을 하고 그 등산이나 하산 도중엔 암자에 들러 잠시 참배도 드리고 휴식을 취하곤 한다.

 종종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는 표현을 하는 걸 본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생성된 것이 결코 아니다. 자연의 분포는 자연 스스로의 몫일 뿐이며 우리 인간들은 그 자연을 보호, 보존할 의무를 지녔을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연을 자신들의 전유물인양 마구잡이로 혹은 개발논리 만을 앞세워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금정산 관통문제만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편리함만을 좇아 문명의 이기에 인간들 스스로가 속박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하면서도 굳이 개발논리를 앞세우는 태도는 뭔가 제고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로 인해 한 비구니 수행승은 자신의 모든 것을 천성산에 건 상태다. 그 스님의 35일째라는 단식 농성이 과연 이유 없는 싸움인가를 한번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종교의 문제라고 국한지어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각종 보호구역으로 규제되어 있는 지역을 파괴하는 것은 땅에 대한 고마움을 망각한 처사이며 자연속에서 각종 혜택을 누리는 인간들의 책무인 때문이다.

 선인들은 많은 일들을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고 해결하려 했다. 눈앞의 이익이나 "우리"라는 식의 협의의 공동의식이 아닌, 지구 혹은 우주 만법을 중히 여겨 모두가 이로운 법을 구하려 했으니 이것이 바로 광의의 공동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듯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자연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요소들은 우주를 지키는 거대한 하우스인 것이다. 생태환경의 보존이라는 함수를 지닌 채 말이다.

 기도와 수행처로서의 사찰은 이제 더 많은 요구들을 수용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도량(度量)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전통만을 앞세워 고집하는 때는 이미 지났다고 봐진다. 그것이야말로 수승한 대처라는 판단이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우리 종교인들의 역할이다. 각 자의 종교를 통해 또는 신행활동을 통해 크게 느끼고 넓게 행동하는 것은 어느 종교를 떠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난 이 작은 지면을 통해 한가지 약속을 하고 싶다. 마음 공부를 통한 대자연에 귀의하는 감사의 기도를 매일 매일 드릴 것을. 그리고 지수화풍에 대한 이치를 더 많은 불자들에게 오롯이 각인시켜 줄 것을.

 그리하여 진실로 아름다운 세상에 이르기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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