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저출산 현상의 다양한 원인들 - 2)육아 부담

영유아법 ‘직장보육시설 설치’ 규정 과태료 등 강제력 없어
지역 의무 사업장 중 8곳만 운영 … ‘출산 후 퇴직’ 부지기수
승진·부서배치 등 불이익 우려 육아휴직은 엄두도 못낼 판
지자체 운영 보육시설 확대·파파쿼터제 도입 등 대책 필요
#1
공무원 최모(여·34)씨는 5살된 아들과 함께 출근한다. 근무지 내에 직장보육시설이 설치돼 있어 마음놓고 아들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이를 밑고 맡길 수 있어 근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고, 퇴근시간도 일정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2
워킹맘 김모(여·35)씨는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6살된 딸의 양육 부담 때문이다. 어린이집 종일반을 보내다 딸이 우울증을 앓은 뒤 매월 50만원을 주고 시어머니에게 맡겼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직장을 포기했다. 김씨는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맞벌이를 했는데 아이 양육 부담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3
영업파트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김모(여·37)씨는 업무특성상 야근이나 회식이 많다. 퇴근이 늦어지면서 아이 양육은 물론 가사일까지 제대로 하지 못해 남편과 다투기 일쑤다. 김씨는 “매월 들어가는 대출금 등을 생각하면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다”면서 “아이 1명 키우는데도 이렇게 힘이드니 둘째 출산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환경

▲ 직장보육시설인 울산시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교구학습을 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어린아이를 키우는 직장여성들의 경우 직장보육시설이나 지원제도가 잘 갖춰지지 않은 탓에 향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수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법을 지키고 있는 기업들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 기업체가 많은 울산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직장보육시설 의무설치대상인 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 22곳 가운데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한 곳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8곳에 그치고 있으며, 5곳은 법정보육료의 50% 수준의 보육수당지급으로 대체하고 있다.

S-OIL과 삼성정밀화학, 노벨리스코리아 울산공장 등 나머지 9곳은 사업장 인근에 보육시설 설치가 곤란하거나 부모들이 이용을 기피한다는 이유로 설치를 미루고 있다.

나아가 500인 이하~1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는 이마저도 규정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이 법조항은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강제력이 없어 직장여성들의 육아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보육시설 설치 확대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남편과 아내가 육아를 공동으로 책임질 수 있는 여건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일부 직장여성의 경우 출산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고, 여성공무원의 경우에도 육아휴직

을 사용할 경우 승진이나 부서배치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편견이 있을 정도이다.

또 아내와 함께 육아의 공동 주체인 남편들의 육아휴직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5년 208명이었던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06년 230명, 2007년 310명, 2008년 355명으로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245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57%(89명)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상승 추세지만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너무 작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일본의 파파쿼터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춘해보건대 유아보육과 정은이 교수는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맞벌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직장보육시설이 기업마다 설치되고, 일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다면 출산율도 늘어날 것”이라며 “직장보육시설 확대와 더불어 워킹맘을 배려하는 사회분위기 조성과 지원제도 확대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육시설 늘리고, 남편이 육아 참여해야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펼쳐온 서울 강남 송파구청이 이뤄낸 결실을 살펴보면 ‘워킹맘 배려=출산율 증가’를 확인할 수 있다.

송파구청은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육아·보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육 서비스 확충에 집중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구립 어린이집 11곳을 새로 열어 모두 33곳으로 늘렸으며, 올해안으로 45개소까지 늘린다는 목표 아래 이미 부지를 매입했다. 아토피 없는 친환경 어린이집도 종전 4곳에서 6곳으로 2곳이 늘릴 예정이다.

그결과 2009년 송파구의 출생아 수는 총 6356명으로 전년 대비 361명이 늘어났다. 이는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고 수준이며, 송파구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다른 자치구와 비교해도 월등히 많다.

서울 출생아 수가 2년 연속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송파구 출생아 수는 2006년부터 4년 연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남성의 육아 참여 또한 출산율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이면서 OECD 평균보다 높은 출산율을 기록한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저출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노르웨이는 파파쿼터제를 도입해 신생아를 가진 아버지가 6주 동안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스웨덴은 1970년대부터 맞벌이부부 모형에 맞춰 출산정책의 틀을 바꿨고 아버지의 육아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남성들의 육아참려를 장려하기 위해 파파쿼터제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도 남성의 육아참여 시간이 2시간 이하인 가정이 아이를 갖지 않을 확률은 77.8%였지만, 육아 시간이 6∼8시간인 가정은 35.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은이 교수는 “송파구와 유럽국가들의 경우와 같이 남편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등 양성 평등 실현을 위한 노력들을 기울인다면 저출산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준수기자 newsma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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