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화창작지대 또따또가
설치미술·금속공예·사진 등 다양한 장르 전문 예술인 참여
500m 반경 문화창작 공간 18곳 조성 ‘시민 소통의 장’ 개방
원도심 르네상스 프로젝트 ‘또따또가’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3일 부산 중구 동광동·중앙동 일원을 찾았다.지하철 중앙동역에서 우체국 방향 출구로 빠져나오면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와 마주 한다. 40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이 부근에 거주하던 피난민, 부두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곳. 가만히 살펴보면 낯설지 않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장렬한 오프닝 신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 원도심 문화창작지대 ‘또따또가’
또따또가는 40계단 앞 거점센터(사무실)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500m 반경 안에 총 18개소에 이르는 문화창작공간을 두었다.
모든 공간은 크기나 주변여건에 따라 제각각 다른 용도로 운영된다. △퓨전국악 및 합창음악을 선보일 코랄센터 △미술작가들의 창작공간 △원도심, 골목길, 시장사람에 대한 스토리텔링 집필 공간 △영상물을 전시·보존·상영하는 갤러리 △또따또가 캐릭터 상품을 개발할 수공예 아티스트실 △무료 문화잡지를 발행하는 편집센터 △전통민속분야 예술인들의 창작공간 △원도심인문학센터백년어 북카페 △독립영화인의 협업을 위한 디렉터 존 △비보이·인디밴드·힙합 등 청년문화 인큐베이터 등이 이미 운영 중이거나 정식오픈(3월20일)을 앞두고 마무리 리모델링 중이다.
이밖에도 4월부터는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에서 매월 한 차례씩 프리마켓도 열릴 예정이다. ‘그들만의 공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려면 보다 많은 이들이 보고 느끼고 어울릴 필요가 있기 때문.
■ 3억원의 시 지원금, 건물주와의 매칭
또따또가 프로젝트를 제안한 부산문화예술교육협의회(회장 차재근)에 시가 지원한 금액은 모두 3억원. 그
중 1억원은 거점센터(사무실) 운영경비와 작업공간 집기류 구입비로 사용됐다.10여개 동 건물에 들어선 18개 공간은 총면적이 2644㎡(약 800평)에 이른다. 아무리 원도심이라지만, 남은 2억원으로 어떻게 그 많은 공간을 흡수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차재근 회장은 지난 연말 두어 달에 걸쳐 건물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발품의 힘’이라고 웃었다. 프로젝트의 취지와 운영계획을 알려주고, 또따또가 예술인들의 입주가 결국엔 원도심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 입이 닳도록 설명했다.
“보증금 없이 월대 만으로 계약을 성사시켰죠. 일년 치 월대를 선지급할테니 대신 많이 깎아 달라고요. 처음에는 기가 찬다는 표정이었지만 수 십년간 원도심 지킴이로 버텨온 몇몇 건물주들이 힘이 돼 주시더군요. 쉽진 않았죠. 일언지하에 거절하신 분도 사실 꽤 있어요”그렇게 지급된 임대료가 2억원. 차 회장은 “건물주들의 배려를 현금으로 환산할 때 약 2억원 정도가 된다”면서 “공간을 제공한 건물주들이 사실은 이번 프로젝트에 매칭 동반자”라고 해석했다.
입주 예술인들에게 지원되는 경비는 임대료가 전부다. 간단한 집기 구입비 및 기초시설비가 조금 더 제공될 뿐이다. 페인트를 칠하고, 커튼을 달고, 소파나 책장, 아름다운 장식물 등은 철저하게 예술인 그들의 몫으로 돌려졌다.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공연단체들 중에는 7000만원이라는 자비를 모아 소공연장을 직접 짓기도 했다.
■ 또따또가 라운딩, 체험상품으로 개발
차 회장과 함께 또따또가 내 작업공간 몇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진작가 쁘리야 김씨의 작업실 이름은 ‘선물(The Gift)’이다. 가장 뒤늦게 합류한 김 작가는 새롭게 마련한
작업공간이 더없이 좋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시대 헌병대 건물(근대문화유산)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큰 선물이 됐지만, 이 공간을 방문할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선물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설치미술가 김경화씨의 작업실은 인쇄소 골목 아성빌딩 속에 있다. 패브릭 작업을 주로 진행하다 몇 년전부터는 시멘트를 주원료로 한 조소작업에 심취했다. 새나 고양이 형상을 주로 한 그의 작품들은 원도심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도시의 개발과 발전에서 소외된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그 무엇보다 김씨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공통 프로젝트를 도모할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각자의 역량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뻐했다.
금속공예가 고정화씨가 운영할 수공예숍 ‘은여우’는 40계단 바로 옆 목공소 자리에 들어선다. 원목 진열장과 조명 등으로 분위기를 잡은 뒤 작품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곳이다.
원래의 40계단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달팽이 계단에는 ‘여행정보센터’가 들어선다. 또따또가에서 이뤄지는 예술교육 프로그램과 개인 창작물을 소개하고, 도심 내 역사적 시설물을 알려주며, 무엇보다 또따또가를 속속들이 체험할 문화상품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목표는 원도심을 문화로 재생하는 것. 하지만 예술인들의 자생력을 아울러 키우자는 취지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차 회장은 최소한의 보조 만으로 원도심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문화프로젝트가 부산 곳곳으로 퍼져가길 바라고 있다. 글·사진=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