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늘었지만 피해액은 줄어...정부, 제도 개선 나서기로

가축방역 당국이 구제역 종식 선언을 함에 따라 석 달째 이어지던 구제역 사태가 일단락됐다.
 과거 사례와 견줘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평가지만, 구제역이 선진국에선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후진국형 가축질병’이란 점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정부는 좀 더 근본적으로 가축질병의 발생과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축산업 선진화에 나서기로 했다.
 ◇살처분 늘고, 피해액 줄고
 정부 수립 후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모두 세 차례다. 2000년과 2002년, 그리고 올해 한 번씩 터졌다. 세 사례를 비교하면 올해의 경우 살처분 규모는 컸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종식시켰고 피해 규모는 크게 줄였다.
 우선 살처분 규모에서 1차(2000년)는 2천216마리였고, 2차(2002년)는 16만155마리였다. 3차에 해당하는 올해는 5천956마리를 매몰처분했다. 가축별로는 한.육우(고기를 얻기 위해 살 찌운 젖소) 236마리, 젖소 2천669마리, 돼지 2천953마리, 염소 46마리, 사슴 52마리다.
 1차나 3차와 비교해 2차 때 살처분 규모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감염 가축이 돼지였기 때문이다. 돼지는 바이러스 전파력이 소의 최대 1천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돼지는 대규모로 사육하는 경우가 많아 살처분도 많았다.
 올해의 경우 예전에 비해 확산을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감염이 우려되면 선제적으로 살처분에 나서면서 살처분 규모가 커졌다.
 발생 기간은 1차 때가 22일(소 농장 15건), 2차가 52일(돼지 농장 15건.소 농장 1건), 3차가 28일이다.
 그러나 피해 규모는 이번이 가장 적다. 1차 땐 3천6억원, 2차 땐 1천434억원의 손실을 봤으나 이번엔 피해액이 425억원(추정)으로 잡혔다.
 살처분이 많은데도 전체 피해액은 가장 적은 이유는 ‘가축 수매’라는 변수 때문이다. 살처분 보상금은 많이 들어갔지만 비교적 조기에 종식시켜 가축 수매 규모를 줄인 덕분이다.
 구제역이 장기화하면 가축의 이동 제한도 길어져 농가가 내다팔지 못해 정부가 수매하는 가축이 더 늘어난다.
 또 혹한기에 발생해 소독액이 얼어붙는 등 방역.소독에 어려움이 컸던 것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한 셈이다.
 새로 도입된 쇠고기 이력제도 구제역 방역에 보탬이 됐다. 송아지부터 귀표를 붙여 관리한 덕에 종전에 비해 소의 이동에 대한 추적이 쉬워졌다.
 그러나 구제역에 걸린 소를 진료한 수의사가 구제역을 전파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나면서 방역 체계의 허점으로 지적됐다. 일부 이동통제 지역에선 사람의 이동을 제대로 제한하지 않는 허술함도 노출됐다.
 정부는 추가 발병이 없으면 6월 중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구제역 청정국 지위 회복을 신청할 계획이다. 지위 회복은 마지막 살처분으로부터 3개월이 지나야 신청할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OIE 산하 과학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청정국 지위 회복을 결정하는데 9월쯤 과학위가 열려 이르면 그때쯤 청정국 지위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축산업자 면허제 도입키로
 정부는 이번 구제역을 계기로 좀 더 근원적으로 가축질병 제도에 메스를 들이대기로 했다.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5월까지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과 세부 추진 계획을 내기로 했다.
 일단 큰 흐름은 몇 가지 잡혔다. 우선 ‘축산 면허제’ 도입이다. 가축 사육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일정 기간 교육받은 사람에게만 축산업을 할 수 있는 면허를 주는 제도다. 덴마크 같은 외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이와 연계해 차단방역을 소홀히 해 질병이 발생한 가축농가는 일정 기간 사육을 제한하는 방안도 생산자단체와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누구나 제한 없이 할 수 있던 일에 면허제를 도입하면 진통이 예상된다. 농식품부는 이를 우려해 생산자단체나 현장의 의견을 듣고 여러 가지 국내 여건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도입한다는 입장이다.
 박현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면허제를 축산업의 진입장벽으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라 일정한 교육 수료, 지식 습득을 의무화하고 큰 과실이 있을 땐 제재를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농가엔 소정의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되 기존 농가는 축산 경험을 인정해 간소화한 교육 프로그램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교육 기간을 얼마로 할지, 모든 가축에 면허제를 도입할지, 모든 규모의 농가에 일률적으로 면허제를 적용할지, 면허 취득 농가에는 어떤 인센티브를 줄지, 그렇지 않은 농가는 어떻게 제재할지 등은 앞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 구체화할 예정이다.
 박 실장은 “구제역 같은 가축 전염병은 한 번 발생하면 그 피해가 축산업 전반은 물론 국민의 식품안전에까지 파급된다”며 “농장주 과실로 전염병이 확산됐을 때 사육 제한 등 제재를 하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하는데 면허제는 그 방법으로 검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르면 올해 중 법적 근거를 만들고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축산업 등록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도 하기로 했다. 축산업 등록제는 농가의 위치(주소), 사육 규모(마릿수) 등을 등록하고 사육 밀도 등을 준수하는 제도인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소, 돼지, 닭, 오리로 국한된 등록 가축에 사슴, 염소 등을 추가하고 사육시설이 일정 면적 이상인 농가만 의무적으로 등록하도록 돼 있는 것을 모든 농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축사시설 현대화, 축산 환경 평가기준 개발 및 평가 결과에 따른 인센티브(정책사업에서 우선 순위) 부여 등도 검토된다.
 방역 제도도 개선돼 질병 의심 가축이 신고되면 곧장 수의과학검역원에서 출동해 이동제한 조치를 내린 뒤 정밀검사를 하도록 한다. 시.도의 지방 가축방역관들이 조치하던 것을 격상한 것이다. 수의사가 구제역을 옮긴 매개체 노릇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에 따른 개선책이다.
 방역대를 설정할 때 물리적인 거리는 물론 지형.생활권 등도 고려하고 소독 의무 대상자에 축산농가와 사료.동물약품 운반자 외에 수의사, 인공수정사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귀표 없이 거래되는 걸 막기 위해 이력제 등록기간을 생후 1개월에서 생후 3일 이내로 앞당기기로 했다.
 가축농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땐 관할 시.군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고 해외 여행을 다녀온 농장주나 갓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72시간이 지난 뒤 농장에 출입하도록 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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