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이라크 파병동의안 표결이 연기됐다. 이는 첨예하게 갈려있는 여론이 보여주듯 이라크 파병안이 찬반 어느 쪽에도 선뜻 손을 들기 어려운 여러가지 쟁점을 내포한 복잡미묘한 사안이라는 점을 더욱 부각시켰을 뿐이다.

 유엔 결의를 무시한채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 이라크전에 명분이나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점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전여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명목상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해체를 내세우고 있지만 미국이 이라크전에 나서고 있는 배경의 본질을 짚어보면 자국의 경제적, 국제전략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물리력의 동원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단순히 힘의 우위에 바탕한 중동장악 및 석유확보 전략이라는 차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볼 때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세계경영 전략이 반전여론을 그대로 타고넘는 무리를 감수케 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냉전해체후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되어가는 과정에서 미국이 기존에 누려온 사실상의 절대적 영향력과 지배력을 계속 지켜나가겠다는 대 유라시아 패권전략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주목하지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럽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의 견제라는 미국의 우회적이고도 장기적인 목표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고, 이것이 당장 북핵문제 뿐 아니라 향후 한반도정세 전반에 미칠 포괄적인 파급영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어려움도 단순히 국내적 반전여론과 희박한 참전 명분에만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의도하는 냉전후 세계질서 장악구도가 열강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에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어려운 선택을 되풀이해 강요하게 될 개연성을 염두에 두지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를 초미의 현안으로 두고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런 선택의 시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록 표결은 미뤄졌지만 국회는 어쨌거나 파병동의안을 가부간 처리해야만 한다. 단순히 도덕성이나 반전여론에 바탕한 판단이나, 아니면 전후 이라크 재건사업과 북핵 등 현안 해결에서 미국의 입김을 감안한 눈앞의 "국익"을 비교형량하는 판단 이상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새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국제적 세력판도 하에서 우리의 대외전략과 외교정책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어나갈 것인지 정부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숙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