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노자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며 의미이며 상징이며 생동하는 이미지이다. 물의 미덕은 순응하는 데 있다. 언제나 부드럽고 연약한 듯이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힘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모습이면서 항상 새로운 것이 물이다. 강세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