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74)전 한양대 교수는 70년대, 80년대이래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성인이자, 논객이다. 리영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의 저서를 통해 세상은 좌,우 또는 수구, 진보의 편향이 아니라 균형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최근 지병으로 거동이 어려운 형편인 리 전 교수가 지난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반대 집회에 참석해서 30여분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설명했다고 한다.

 리 전 교수는 "첫째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한국과 미국은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공격이 있을 경우에 한해 원조를 한다고 돼있다. 둘째 이 원조도 태평양 지역에 한정돼 있다. 그러므로 외부에 의해 도발되지 않은 전쟁에 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베트남전에 한국군대가 원조를 하기 위해 갈 때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한미동맹관계를 근거로 간 것이 아니다. 이 조약으로는 베트남전 파병을 요청할 수 없어 당시 미국은 이런 방법을 썼다. 바로 남베트남 정부가 한국에 독자적으로 군사를 요청하도록 하는 궁색한 방법이다." "동맹국가의 전쟁에는 무조건 참전해야 하나? 동맹국가의 전쟁이라고 해서 무조건 참전해야 할 필요가 없다. 현재 미국과 함께 이라크를 공격하고 있는 영국은 베트남전 당시 군대는커녕 아무런 원조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의장대 6명만을 보냈을 뿐이다"

 미국을 지지하기로 했던 나라들도 지금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전 발발 직전 미·영과 함께 3국 정상회담을 열어 전쟁의 명분을 제공했던 스페인은 현재 가장 극심한 민심이반을 겪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스페인 유력 일간 ABC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약 91%가 스페인의 이라크전 군사 개입을 반대했으며 10명 중 9명은 전쟁에 반대했다" "비전투병 파병도 허용할 수 없다"는 네티즌들의 e-메일이 폭주해 집권 국민당(PP) 홈페이지는 다운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오는 5월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의 참패가 예상되는 등 압력이 거세지자 아스나르 총리는 미국에 파병 거부 의사를 전달한 데 이어 미국의 이라크 외교관 추방 요청까지 거절, 민심 수습에 나섰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강경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나라 중 하나인 호주는 정예부대와 해군 기뢰제거 부대, 항공기 조종사 등 2천여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했다. 그러나 지난 26일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정상회담에 동참해 달라는 미·영 양국 정상의 요청을 거부했다. 당초 미국에 전비 지원과 파병을 약속했던 일본 정부 역시 국내의 반전 여론을 의식, 미국이 이라크전 종결 후 자위대 파병을 요청한 데 대해 "유엔 승인이 있으면 파병하겠다"고 난색을 표했으며, 주일 이라크 대사관 폐쇄 요청도 거부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한미동맹 관계를 위해서, 국익을 위해서 파병을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국익이고, 무엇이 건전한 한미동맹관계인가? 94년 한반도 위기때 처럼,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북한에 대한 공격계획이 진행되고, 우리 국민은 나중에야 아는 동맹관계, 미국이 하자는 대로하는 동맹관계, 이것이 무슨 국익에 도움이 되고, 한반도 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진정한 동맹관계, 국익은 우리나라의 국익을 중심에 놓고, 우리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서 당당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압도적 다수의 국가와 세계여론이 반대해도 전쟁을 강행하는 미국이,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한다고 우리의사에 맞게 한반도 정책을 바꿀 것이라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노무현 정부와 여야 정당, 국회의원들에게 촉구한다. 언제까지 미국주도의 일방주의에 끌려 다닐 것인가? 당당한 자주외교만이 제대로 된 한미동맹관계를 발전시키며,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고, 진정한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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