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천상리(川上里)는 자그마한 시골마을 하나가 10여년만에 1만5천여명이 거주하는 울산 최대의 신주거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2001년 범서면이 범서읍으로 승격하는데 주역을 맡았다.

 기존 자연마을인 송현마을과 천상마을, 대동마을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거나 개발예정지역으로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평천마을은 완전히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려 이제는 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다.

 천상리가 울산의 배후도시로 성장하게 된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지면적 27만㎡ 규모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지난 88년 5월부터 시작됐지만 시공업체의 부도 등으로 7차례나 사업기간을 연장, 10여년 지난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도 24호선에서 천상지구로 진입하는 진입로 문제도 마찰과 갈등이 심했으며 결국 고가도로를 건설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고가도로가 완성되고 범서읍 일대 교통체증이 해소된데 힘입어 토지구획정리사업이 마무리단계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중앙도로 폭이 2차선에 불과해 불법주정차, 노점상 문제 등의 교통혼잡 후유증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천상리 아파트단지는 인근 구영리보다 규모가 2배나 된다. 상권도 그 만큼 활기차다. 신도시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농협지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의원과 한의원이 20곳이나 된다. 약국도 5곳이나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의원 가운데 치과나 소아과 비중이 높다. 패스트푸드점과 각종 식당 체인점이 즐비하다. 천상리 주민 구성원이 젊은층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상리 주민은 30대가 주축이다. 출·퇴근이 용이하면서 시골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전세를 들어오는 세입자들이 많다. 그 만큼 유동인구도 많다. 찾는 사람이 늘면서 전셋값이 훌쩍 뛰어 올랐다. 30평형대 아파트 전셋값이 3년전만 해도 3천만원대에 머물렀던 것이 올해부터는 7천만원대를 육박하고 있다. 전봇대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전세 안내문은 찾아보기도 힘들다.

 활기찬 분위기에 비례해 이웃이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져 가는 아쉬움도 있다. 평천3리 이장을 맡고 있는 김영혜씨(여·55)는 "출퇴근 직장인들이 많아 민방위 안내문 공문서를 전달하려면 2~3번씩 찾아갈 정도로 만나기가 어렵고 아파트라는 단절된 공간탓에 이웃과 함께하는 자리나 시간은 거의 없는 편"이라며 "이와는 반대로 이곳에서 오래 거주한 주민들 사이에서 이웃간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소규모의 모임을 만들어 나가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어 주민들이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마을들도 점차 옛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천상리 가운데 가장 안쪽에 위치한 천상마을은 아파트단지와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연한 시골 모습 그대로다. 마을 중간에 수령이 500년된 당산나무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형적인 시골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2차 도시개발예정지구에 들어있어 주민들의 개발 기대감이 높은 곳이다. 이 때문에 50여가구에 속하는 마을 주택들 가운데 새 건물은 마을회관 뿐이다. 언제 개발될 지 몰라 주민들 그 누구도 손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천상마을 진정대 이장(55)은 "초·중학교 예정부지에 문화재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며 아파트단지가 추가로 들어설 곳이 천상마을 밖에 없어 개발 기대감이 상당한 곳"이라며 "마을주민 스스로가 "도심속의 섬나라"라고 할 정도로 아파트단지와는 별개의 마을로 옛 시골정서를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천상리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송현마을은 울산의 만성 교통체증지역으로 악명이 높았던 범서삼거리와 범서읍사무소, 우체국 등이 있는 읍소재지이지만 개발제한구역으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70여년전의 "하월가" 한식집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을 정도다.

 천상리 고가도로를 지나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대동마을도 배밭과 상황버섯 농장 등이 있는 농촌마을 모습 그대로다.

 신도시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천상리이지만 문수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따라 수많은 전설을 갖고 있다. 목욕하는 선녀를 욕보인 나뭇꾼이 선녀가 빠져 죽자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함께 빠져 죽었다는 "애기씨 웅덩이", 직경이 15m나 되는 평평한 "마당바위", 왜구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성을 쌓을때 산신령의 명에 의해 짐승들이 바위를 나르던중 늦게 나타나 꾸지람을 듣고 바위를 놓고 갔다는 "고양이짐바바위",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었다는 "용당수"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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