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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관방시설]본성-외성 연결하는 긴 성벽 산록부 따라 축성14. 서생포왜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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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4.29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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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해안 몰려와 지구전 위해 쌓은 거점성
본국과 병력·물자 교류 위해 해안에 축조
방어 위주 일본식 성곽구조 다단식 형태

   
▲ 서생포 왜성의 평면도. 산상에 위치한 본성과 항구에 위치한 항구에 위치한 외성을 연결하는 ‘노보리이시가끼’라는 장성을 쌓았다.
우리나라의 성(城)과 사뭇 다른 서생포왜성의 모습을 보면 왜 이런 구조와 형태로 만들어졌을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여러 해석과 주장이 있어왔는데, 대표적으로 한자의 ‘勝(승)’자를 모사했다는 설(說)이 있다. 아주 흥미로운 해석이다.

하지만 성의 입지와 공간구성적인 면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왜성(倭城)이란 용어는 우리 선조들의 생각과 손에 의해 축성된 우리 성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 왜군들이 쌓은 성을 말한다. 이들 왜성은 성격상 크게 연결성과 거점성으로 나뉜다. 연결성은 임진왜란 첫해(1592년),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올라간 왜군이 부산에서 서울을 거쳐 평양에 이르는 길목에 군수물자의 보급로 확보를 위해 만든 성이다. 연결성은 군대가 거의 하루에 행군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쌓았으며 주로 우리의 읍성을 고쳐서 사용하거나 적당한 읍성이 없는 곳은 새로이 목책이나 토루(土壘) 등을 간단하게 시설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연결성은 관련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거점성은 조선수군과 의병, 조명연합군의 반격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들이 이듬해(1593년) 동남해안으
   
▲ 산지의 능선을 따라 단일성벽을 두른 포곡식 성곽.
로 몰려와 지구전을 준비하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거점성은 왜군들이 임시로 머물기 위해 쌓은 성이 아니라 장기간 주둔하며 그들이 강점한 지역만이라도 영토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쌓았다는 점에서 통치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거점성은 현재 동남해안 일대에서 이미 조사된 것만 30여개소에 달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 바로 서생포왜성이다.

이 서생포왜성이 지닌 입지상의 특징을 보면 다른 왜성과 마찬가지로 해안에 가장 근접한 지형을 선택해 축조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각 왜장들은 자신의 영국(領國)에서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직접 조달했다. 가토 기요마사 또한 약탈이나 강제 징발만으로는 많은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으므로 자신의 영지인 히고쿠니(肥後國, 현 구마모토현)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수시로 서신을 통해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확보해 서생포로 보낼 것을 지시했다. 그를 대신해 영국(領國)을 다스리고 있던 가토 키자에몬(加藤喜左衛門)에게 내린 지령서에는 병력과 인부를 비롯하여 무기와 군량미, 군수품, 생활필수품 등 약 50여개에 이르는 물품의 양과 구입방법, 도착기한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 강과 만이 만나는 지형을 이용해 축성한 기장왜성.
이렇게 모아진 물자와 인력은 일본으로부터 수군들에 의해 현지로 수송됐기 때문에 항시 배를 댈 수 있는 항구가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특히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 의해 일본 수군이 여러 차례 격파되었던 터라 보다 안전한 항구의 확보는 최대의 생명선이었던 것이다.

서생포는 지형적으로 강양에서 대송까지 육지로 휘어들어가며 아늑한 만(灣)을 이루고 있어 왜군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은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고 파도나 바람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또한 왜성의 북측 약 500m 떨어진 지점에는 동해로 유입되는 회야강(回夜江)이 위치하고 있어 자연 해자(垓字)의 역할을 한다.

서생포의 이러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여 왜군들은 먼저 현재 국도 31호선에 접한 작은 언덕을 안쪽으로 활
   
▲ 웅천왜성의 석축.
모양으로 깎아서 배를 접안시킬 수 있는 선착장을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퇴적과 토지구획정리사업 등으로 인해 뭍으로 변했지만 그 당시에는 바닷물이 성 바로 아래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선착장을 방어하기 위해 남측 구릉에는 ‘데지로(出城)’라고 부르는 외성(外城)을 석축으로 견고하게 구축했다. 현재에도 외성부의 동단에는 높이 10m에 달하는 2단의 석축 성벽이 마치 시위라도 하듯 위협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왜성에서는 강과 만(灣)이 만나는 지형을 이용한 예가 많은데 가까이는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쌓은 기장왜성에서도 볼 수 있다. 기장왜성은 조선전기 두모포(豆毛浦) 수군만호진성이 있었던 죽성만의 서쪽 구릉 위에 축조했으며 북쪽에는 청강천이 흐르며 자연적인 외곽선을 형성한다. 왜성의 이러한 입지양상은 우리나라의 수군진성과 유사하다.

또한 이 당시 서생포왜성의 선착장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는 정유재란시 순천왜성의 전투상황을 그린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卷)>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전투에 참가한 명나라 화공이 그린 것으로 내용은 실지 현황과 거의 일치한다. 최근 순천시에서는 이 그림과 발굴결과를 토대로 순천왜성 일부를 복원한 바 있다.

서생포왜성에서 전투를 위한 본성(本城)은 해발 130m의 산정(山頂)에 여러 겹의 석성으로 구축해 놓았다. 주곽에 해당하는 이 산성부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산성과 비교해 볼 때 공간구성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산성은 계곡을 감싸고 있는 산지의 능선을 따라 단일 성벽을 두른 소위 ‘포곡식(包谷式)’ 성이 일반적으로 성내에서 물의 확보가 유리하고 비교적 큰 내부공간을 가진다. 우리는 삼국시대 이후 통일국가가 지속되어 온 관계로 대규모 외침에 대비한 성곽이 필요했고, 따라서 유사시 인근의 모든 관민이 성으로 입보(立保)하여 일정기간 농성하며 총력전을 전개할 수 있는 구조로 성곽을 축조했다.

반면 일본은 중세이후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거치며 여러 쿠니(國)로 분열되어 봉건영주들 사이에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8세기경에는 징병제가 폐지되고 전문 무사계급이 형성됨에 따라 전투는 우리처럼 관민공동체의 총력전 양상이 아니라 이들 무사집단을 중심으로 한 전투원만으로 치러졌다.

자연 성곽도 주민수용보다는 전투원의 전투적 기능만을 극대화하는 진지적(陣地的) 성격이 강했다. 그 결과 일본의 성곽 구조는 다단식 형태로 발전하며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다단식 구조는 적의 공격시 제1선의 전투를 2선에서 지원하고 1선이 붕괴되면 신속히 2선으로 후퇴하여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소규모 병력으로도 여러 차례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생포왜성에서는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항구가 해변에 위치해 산성부와 분리됨으로써 방어적인 면에서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산상의 본성과 해변의 선착장 및 외성을 연결하는 긴 성벽을 산록부를 따라 쌓고 내부는 왜병들의 거주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성(長城) 형태
   
▲ 이철영 울산과학대학(공간디자인학부) 교수

의 이것을 일본식 성곽용어로는 ‘登石垣(노보리이시가끼)’라고 부르는데 왜성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서생포왜성은 분명 우리와는 다른 성의 구조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는 축성주체가 다름에서 오는 축성자의 사고, 전법(戰法), 무기체계, 역사문화적 배경 등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서생포왜성은 근세 한일 양국의 성곽축조 방법을 비교, 연구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철영 울산과학대학(공간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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