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요지경인지 요즘 돌아가는 주변 상황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하루도 마음편할 날이 없는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어서 "세상이 시끄러워 살맛이 안난다"는 푸념이 실감날 뿐이다.

 북한 핵문제로 발단된 위기감이 한반도를 엄습하더니 대구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지하철 참사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눈물겨운 사연과 함께 가슴에 새긴 한을 채 달래기도 전에 세계는 다시 이라크 전쟁의 소용돌이에 내몰리고 말았다. 우리와는 먼 남의 나라에서의 전쟁이지만 TV화면에 비춰진 전쟁터의 사상자와 부상자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들 또한 보이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전쟁의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국론 분열 우려까지 야기되던 파병동의안도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반전여론은 다시 불붙고 있다. 이러다가 혹 나라가 이념의 강으로 갈라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도 만만찮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밝힌 "악의축"의 하나인 북한이 "제2의 이라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스런 얘기가 나올 때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섬뜩함마져 느낀다.

 당초 이번 이라크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날거라던 예상을 뒤엎고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당장 경제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경기는 갈수록 혼미속에 빠져드는듯 하고 유가상승 속에서 농수산물값과 공공 및 개인서비스 요금이 줄줄이 인상돼 매일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야할 판이다. 이러다 보니 다가올 내일이 무서워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게 되고 불황의 골은 더 깊어만 가고 있다. 혹자는 이러다가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형국이다. 여기저기서 피해가 속출하자 행정기관은 물론 지역 경제 관련 기관·단체가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체감경기는 IMF체제 때 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판국이다. 이런 와중에도 경제정책은 오락가락 하면서 갈피를 못잡고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참으로 속이 타지 않을 수 없다.

 숨돌릴 여지도 없이 이번에는 또 괴질(급성호흡기 증후군)로 전국이 뒤숭숭하다. 중국 광둥에서 발생한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 대책도 없다는 이 괴질은 온 세계로 번져나가면서 "국내상륙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실제로 괴질공포 확산으로 울산지역에서도 전체 고객의 80~90%를 차지하는 중국과 동남아 단체관광이 전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고 한다. 최근들어 "중국열풍"을 누리던 유학원들도 유학 알선이나 상담이 완전히 끊겼을 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학생 조기귀국 요구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는 해외비상체제 근무에 돌입했는가 하면 울산지역 각 보건소와 병·의원 등에는 감기유사증세를 앓는 환자들이 괴질감염 여부를 물어 보는 등 법석을 떨고 있다. 급기야는 국립보건원이 괴질이라는 용어가 국민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질병의 명칭을 "사스"로 부르기로 했다.

 이렇듯 어지러운 세상을 시기라도 하듯 4월의 봄은 얄밉게도 성큼 다가왔다. 길가에는 흐드러지게 활짝핀 개나리와 벚꽃이 풍광을 주도한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마음에 와닿는 봄의 느낌은 아직 봄볕처럼 따사롭지 못하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한나라 원제시절 억울하게 흉노족에게 끌러간 미인 왕소군의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오랑케 땅에는 꽃도 없고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당시의 심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요즘같아서는 "춘래불사춘" 증후군이 이해가 간다.

 그저께 이라크전장의 포화속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이 신문 1면에 커다랗게 실렸다. 한낮의 뜨거운 사막 햇볕을 등으로 가리고 아이를 안은 한 이라크인 아버지가 고열에 들뜬 네살짜리 아들을 달래고 있는 "포로 아버지와 병든 아들"의 모습이었다. "전쟁과 평화"의 메시지 뒤에 비친 "부자의 정"이라는 소박함에서 부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이 "잔인한 4월"을 위안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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