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으며, 역사를 의식하며 살아야 할 처지도 아닌 필자에게 역사란 언제나 가벼이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이었으며 책이나 TV 드라마 속의 세상이었다. 근래 우리의 역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재해석이 활발해지며 이야기류의 국사 및 세계사책이 많이 출간됨으로써 좀더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역사에 접근할 수 있었다. 역사를 읽고 생각하면서 인간과 인간사에 대한 통찰력을 깨우치는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재미와 교양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는 역사관을 피력했다.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이며 국군 통수권자로서 그가 이끌고 지켜야 할 조국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 했듯이 그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한국의 역사를 쓰고 싶기도 할 것이다.

 유사이래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었으며 끊임없는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힘겹게 버텨온 우리의 지난날을 보면 자랑보다 아쉬움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유쾌하지 못한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자 YS정부는 신한국 건설, DJ정부는 제2의 건국을 내세웠다고 본다. 가려졌던 진실이 밝혀지기도 했고 편협한 시각 탓으로 혼란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선인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고뇌와 즐거움의 자취를 있는 그대로 추적할 수 있는 교양과 재미로서의 역사인식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거기서 오늘을 살아갈 교훈까지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일본 출신의 재 이탈리아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학자들이 말하는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고 케케묵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들이 태어난 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것을 아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을 앎으로써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려고 하는 우리에게도 생각을 위한 힌트나 재료를 주게 된다.”면서 "역사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표현했다.

 다소 길게 인용했지만 참으로 적절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마키아벨리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좋아하고 로마와 베네치아(둘다 1천년 이상을 지속한 국가)를 사랑하여 거기에 천착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역사를 과정 그 자체로 인정하여 교양이나 재미로 보느냐 혹은 호소하거나 주장하고자 하는 것의 예증으로 역사를 이용하느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며 더 넓게는 그 민족의 성격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

 요즈음 나만이 또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그룹만이 옳고 정의롭다는 생각과 행동이 많은 것 같다. 나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행동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열린 마음과 균형감각을 갖춘 사람들이 많을 때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되지 않을까. 역사를 알고 가까이 하는 것은 회고주의나 복고주의와는 다르다.

 과거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의 편린을 얻을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는 격언이 있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수 많은 개인들이 각양각색의 생존방식을 따라 엮어내는 세상에서 현명한 이들은 역사를 통해 통찰력을 키우고 교양을 깊게하며 지성을 연마한다.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역사를 부정하고 단절해야만 변화되고 개혁할 수 있지는 않다. 포퓰리즘과 설익은 이념으로 추구하는 변화와 개혁은 시행착오를 일으킬 뿐이며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해칠 뿐이다.

 이 세상에서 불변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며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변화의 추세에 민감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많아진다. 모든 사람이 앞날을 예견할 수 없으며 누구나 예지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교양으로 생각하고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감지하는 통찰력을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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