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세의 유불리에 따라 수시로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을 "철새"에 비유한다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말과 행동이 다른 단체장은 고스톱 판에서의 국화 열에 견줄 수 있을까.

 고스톱에서는 국화 열을 필요에 따라 쌍피로, 또는 열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리원전 건설과 관련, 지역에서 반핵여론이 재점화 되고 있다. 서생면 일원이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지정고시 되면서 촉발된 반핵여론은 한나라당의 공약으로 이어졌고 당 공천을 받은 자치단체장도 맥을 같이 했다.

 박맹우 울산광역시장과 엄창섭 울주군수도 당의 방침에 따라 선거공약으로 원전백지화를 내세웠다. 한나라당 일색인 지방의회는 반대대책위까지 구성했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은 두 단체장의 원전백지화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정부에 원전백지화를 촉구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국책사업 불가피론"에 함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체념적 회피론도 한 몫하고 있다.

 엄창섭 울주군수는 최근 국책사업 불가피론을 피력했다가 반핵단체와 지역언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진의가 왜곡된 오해에서 비롯됐다며 말을 바꿨다.

 근거 없는 오해가 없다고 했던가. 최종 사업승인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한수원이 원전건설사업계획을 기정 사실화하고 사옥건립을 비롯해 도로우회공사 등 기반시설조성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신고리원전건설사업 승인 자체를 지자체 차원에서 막을 권한이 없다고 하지만 자치단체장이 진정 원전백지화 의지를 가졌다면 자치단체 인허가만으로 가능한 원전관련건설공사를 부분적으로 막을 수 있었기에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선거법 위반혐의와 관련해서도 엄군수는 오해에서 시작됐다고 항변하고 있다. 엄군수는 출마전 울산광역시 정무부시장 시절 지역 산악회에 제공했던 금품과 관련해 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금품제공 당시 엄군수는 선거출마 계획도, 생각도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지역 후배들이 찾아와 지원요청을 하는데 안들어 줄 수 없었다며 재판상황까지 도달한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기도 했다.

 또 엄군수는 재판이 끝나면 지역 여론을 여러갈래로 찢어놓고 있는 현재의 구도를 타파, 선거과정에서 발생한 반대자를 적극 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전임자에 대한 비난은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군정에 대한 비판적 지적을 비난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엄군수는 지역 민원수렴을 위해 군관계자를 대동, 3월 한달여동안 읍면을 순시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오해를 살만한 행위를 했다. 순시과정에서 정당관계자를 데리고 다니며 주민들에게 소개, 군정수행보다는 정치활동에 치중한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엄군수에 대한 오해의 정점은 원전지원금 사용계획에서 최고점을 이룬다. 전임 박진구 울주군수가 원전유치대가로 향후 10년간 1천100억원의 지원금을 받기로 하고 이미 570억원을 집행, 선심성 사업비로 사용했다며 박군수를 비난하면서도 나머지 원전지원금에 대한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울주군 관계자는 환경단체 반발 움직임 등으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추경예산편성과정에 원전지원금을 요청할 계획이 있음을 암시했다. 근거없는 오해는 있을 수 없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국화 열 같은 정치적 유연성보다는 원전문제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분명한 입장이 절실한 때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