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9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중심광장에 서있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미군의 로프에 의해 단숨에 끌어 내려졌다.

 길가에 드러누운 후세인의 동상을 발로 짓밟고 자유를 환호하는 이라크 시민들을 보고 전세계의 TV시청자들은 가슴이 후련해지는 쾌감과 시원함을 느꼈을 것이다. 무릇 대중은 집권자나 인기인의 몰락을 보고 동정하기보다는 후련해하고 즐기는 성향이 있다.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 이후 UN의 경제제재 조치로 외국과의 무역에 통제를 받은 이후 경제는 피폐하고 국민의 자유는 강압적인 정부의 압제에 의해 억압되어 왔기 때문에 독재자의 몰락으로 비로소 폭압에서 풀려난 이라크인들의 해방감은 하늘을 나는 듯 상쾌했을 것이다

 우리 국민도 43년전 1960년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소식을 라디오로 듣고 오늘의 이라크인과 비슷한 감흥을 느낀 적이 있다.

 단지 이라크인의 해방은 외세에 의한 것이었지만, 우리 국민이 자유를 찾은 것은 우리들 젊은 학생과 정의감 넘치는 시민의 목숨을 건 투쟁에서 쟁취된 것이 다를 뿐이다.

 그 날의 감격을 되살리기 위하여 1960년 4월19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격문을 이 지면을 통해 되뇌여 본다.

 "여기 대학의 양심은 증언한다. 우리는 보다 안타까이 조국을 사랑하기에 보다 조국의 운명을 염려한다. 우리는 공산당과의 투쟁에서 피를 흘려온 것처럼 사이비 민주주의의 독재를 배격한다. 조국애의 사랑과 염원이 맹목적 분격에 흐를까. 우리는 얼마나 참아왔던가. 보라! 갖가지의 부정과 사회악이 민족적 정기의 심판을 받을 때는 왔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엄연한 양심으로 일어 나노니 총칼로 저지치 말라. 우리는 살아있다. 동포의 무참한 살상 앞에 안일만을 탐할 소냐! 한숨만 쉴 소냐! 학도여! 우리 모두 정의를 위하여 총궐기하자!"

 이렇게 시작된 4·19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186위의 꽃다운 젊은 생명이 민주주권의 수호신으로 산화하였으며 6천400여명의 중·경상자가 4월의 민주광장에 선혈을 뿌렸다.

 이곳 울산 출신인 당시 서울 한양공과대학교 2학년생이던 "정임석"군도 4월19일 경무대 앞에서 불의의 총탄에 맞아 동년 4월25일 21세로 숨졌다. 그의 장렬한 희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에 "순국대학생 오천 정군 임석 위령비"를 건립하고 매년 4월19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가정을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으나, 만일 1960년 4·19혁명이 없었다면 우리도 지금까지 이라크인들처럼 정치적 강압과 경제적 궁핍에 고통받아 왔을 지도 모른다.

 1950년 6·25자유수호전쟁터에서 참전용사들은 우리나라의 국토를 방위하여 국권을 수호하였고, 4·19 당시 젊은 투사들은 하나 뿐인 생명을 바쳐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낸 것도 위대한 일이겠지만,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안겨준 그 공헌도 크다고 하겠다.

 또다시 다가온 4월19일을 맞아 삼가 4·19혁명 희생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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