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발발한지 석달 후, 세상 모르고 조용하기만 하던 울산 동구 주전마을에도 징집 명령서가 날아왔다. 마을의 어머니들은 전쟁터로 나서는 아들 67명의 손을 붙잡고 “절대 나서지마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지만, 그 중 상당수는 고향의 바다를 다시 보지 못했다.

“5년이 조금 넘어 돌아와보니 소식이 끊긴 친구들이 많았어요.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고향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죠.”

청년은 이후 단 한 번도 고향을 등지지 않았다. 주전동 경로당의 이보영(81·사진)회장. 이 회장은 지난 2일 지역사회 노인복지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유난히 상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수많은 상을 받아온 그다. 어촌계장, 지역 농·수협 이사 등 각종 직책을 맡으면서 주전의 발전에 앞장서 온 이 회장은 농수산 장관상과 새마을 훈장 등을 받았다. 하지만 옷깃에 늘 달려있는 것은 참전용사 배지다.

이 회장은 “상을 받을 때마다 축하 인사가 쏟아지지만 그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그냥 고향을 위해 일한건데 주위에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간 주전마을에서 벌어진 일 중 이 회장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마을 형님’들에게 떠밀려 무려 13년간이나 어촌계장을 맡으면서 주전의 안길 정비와 상수도·지붕 개량에 앞장섰으며, 마을 수익을 크게 늘렸다해서 ‘증산왕’이라는 표창도 받았다. 경로당 회장을 맡고 나서는 어르신들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이렇듯 마을의 대소사를 도맡아 하다보니 지금도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길을 나서면 인사를 청하는 이들로 인해 시간이 늦어지기 일쑤다. ‘책을 내려고 해도 한 권은 낸다’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주전의 근대사는 그와 함께 흘러왔다.

이 회장은 지난 6월 가슴에 맺혀있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었다. 경로당 앞에 세워진, 주전의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공훈비가 그것이다. 적지않은 비용 탓에 고민도 했지만,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기어코 비를 세웠다. 어떤 이는 앞에서 눈물을 훔치다 가고 어떤 이는 “공사비에 보태달라”며 만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고 갔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일인데 지금이라도 이뤄서 다행이죠. 바람이요? 제 고향을 위해 더 오래오래 일할 수 있는 게 바람이라면 바람입니다.”

김성수기자 kss@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