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선진국가를 탐구하다 -일본
매년 10월 일·가정 생각하는 달 지정
국가·사회가 갖는 양육의 책임 강조
가족친화기업·아빠 육아 참여도 유도

▲ 일본의 출산율은 1.34(2009)명으로 아직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을 기조로 한 새로운 저출산대책을 수립, 사회공감대 확산 및 기업체 참여를 이끌며 조금씩 상향 모드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은 일본 보육기관에서 놀이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어린이들.

일본의 출산율은 2009년 기준으로 1.34명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그보다 아래인 1.15명이었다. 출산율만 놓고 본다면 일본은 아직 좋은 기록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지만 연간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분명 차이는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1989년 1.57명, 2005년 1.26명으로 바닥을 찍었고, 더디긴 하지만 서서히 상승모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황금돼지해를 기점으로 반짝 상승곡선을 탔을 뿐 다시금 하향추세로 되돌아왔다.

저출산 대책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 프랑스와 달리 일본은 아직 우리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만한 수준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나 성향 등이 상대적으로 우리와 닮은 꼴인 일본의 사례가 어쩌면 우리에게 보다 적확한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으로 출발
2005년 일본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해야 함을 알게됐다.

당시 일본의 총인구는 2만1266명이 줄었고, 출생자 수는 106만명, 합계 출산율이 1.26으로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1989년 출산율이 1.57로 하락한 이후 저출산 문제가 공론화 되었으나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는 취업 여성들에 대한 보육서비스만 지원하면 출산율이 회복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여겨 왔다.

가령 일본 정부가 첫 저출산 대책으로 내세운 엔젤플랜(1995~1999년)은 보육지원 중심의 정책으로 보육서비스 확충과 시설기반 정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후 시행한 신엔젤플랜(2000~2004년)을 통해서도 보육 상담, 모자보건 등으로 정책의 범위만 확대했을 뿐 보육지원이란 기본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진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저출산 문제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현상에 의해 유발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보육시설 확충에만 중점을 둔 것이 당시 일본 저출산 정책의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실제 엔젤플랜이 마련되고 추진될 당시 각종 보육시설 지원 등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발휘할 수도 없던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기업 동참이 성공의 관건

1980년대 말부터 소자화(少子化·가임여성이 자녀를 적게 출산하는 현상)를 고민해 온 일본은 최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를 새로 만들었다. 바로 ‘워크(Work)와 라이프(Life)의 밸런스’다. 쉽게 말해 일벌레로 알려진 일본인들의 과도한 직장생활을 가정 쪽으로 기울여, 양자간에 보다 조화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출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기초로 한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2006년) 제정 이후 단계적으로 개선정책을 실현하며 제도적 틀을 갖춰온 일본은 요즘 이를 실제로 실천하고 활용하기 위한 기업과 사회전체의 의식개혁을 단행하는 단계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 동경디즈니랜드로 소풍을 나온 일본 유치원생.

일본 후생노동성은 매년 10월을 ‘일과 가정을 생각하는 달’로 정하고, 일과 육아 및 간병이 양립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도입,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을 ‘패밀리 프렌들리 기업’으로 선정해 표창한다.

등급에 따라 우량상, 노력상 등으로 나눠 수상하고 있으며, 첫 제도를 도입한 1999년 이후 지금까지 300개 안팎의 기업들이 그 표창을 받았다.

생활용품 제조회사인 ‘카오 컴퍼니’는 인사부 내에 아예 보육지원을 전담하는 ‘EPS(Equal Partnership) 추진실’을 따로 만들어 상근 인력을 둔다. 어느 해는 6000명 안팎의 사원 중 135명의 사원이 육아휴직제를 활용하기도 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위해 상사와 면담할 때는 알게 모르게 작용될 수 있는 사측의 은근한 압력을 감시하기위해 항상 EPS 담당직원이 입회를 한다.

여성 근무자가 월등히 많은 시세이도사(社)는 육아지원 분야에서 일본은 물론 세계적 기준에서도 한참 앞줄에 나가있는 기업이다. 탄력근무제는 물론 육아휴직자 지원 및 업무복귀를 위한 사내외 인터넷망 ‘위위’(Wiwiw), 사내 육아방 ‘캥거룸’, 아동간호휴가제 및 남성 배우자 유금 육아휴가제 등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위한 제도 측면에서 가히 선두를 달린다.

은행 등 대형 고객들을 상대로 기술서비스에 주력해 온 NEC는 보다 현실적인 육아지원으로 정평이 높다.

결혼과 출산 등으로 인한 사원들의 경력 중단을 막기 위해 NEC는 육아를 위해 부모님 집 근처로 이사할 경우 복덕방 비용을 비롯한 이사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할 정도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지원의 손길을 뻗친다. 주거지 근처에 적절한 보육원이 없어 이사를 해야 하는 사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패밀리 서포터를 이용할 경우 요금의 상당 부분을 회사에서 보조한다.

일본 내 3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영업장에서는 어느 정도 보육지원제도 또한 정책돼 있다. 규모가 영세해 육아휴직 등을 활성화하기 힘든 회사에서는 후생노동성이 휴직인력을 대체하는 보조인력 고용비를 일부 지원한다.

□일본 저출산 정책의 시사점

일본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저출산정책 운영에 고려해야 할 점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녀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자녀양육의 일차적 책임은 가족과 보호자에 있으나 국가와 사회 또한 자녀양육의 책임을 지닌다는 기본이념에 근거해 정책이 추진된다. ‘출산율 저하’라는 현상에 대응해 가족의 자녀양육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영역뿐 아니라 민간영역인 기업에서도 이를 같이 짊어지도록 규정한다.

또한 육아와 일의 양립 지원 정책에서 ‘남성을 포함한 일하는 방식의 재검토’를 위한 정책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기업으로 하여금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모휴가제를 의무화하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남성 노동자의 육아 참여를 유도한다. 그동안 간과돼 온 남성 노동자의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자녀양육 지원은 가족을 형성하고 있는 노동자 전원을 대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맞벌이 가족의 취업여성에 국한되던 육아와 일의 양립지원이 자녀를 가진 모든 가족지원으로 확대되고 기업에 대해서도 직원의 가족 및 자녀양육 문제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국가적으로 가족의 자녀양육 지원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가족의 자녀양육 책임을 인정하고 있어 여성에게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