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국회 정보위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한데 따른 마찰이 "이념 편향성" 논란 차원을 넘어 양측간 물러설 수 없는 기세대결로 비화되는 조짐이다. 북핵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경제난 등 나라 안팎으로 무거운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대치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정국경색은 국정원장 청문회가 발단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내년 총선까지 정국의 흐름과 쟁점을 어떻게 잡아나가느냐 하는 여야의 정국주도 전략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노 대통령측으로서는 고 원장의 "이념 편향성"을 문제삼은 정보위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향후 개혁 주도세력 포진작업과 개혁의 내용 자체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말 그대로 소수정부의 힘없는 대통령 역할에서 벗어나기도 어렵고, 이념공세에 대해 사실상 대응수단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 월권"을 지적한 노 대통령의 언급을 강력히 맞받아치지 못할 경우 국회 다수당으로서의 입지를 상당부분 잠식당할 뿐 아니라 앞으로 노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를 제대로 견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양측간 격앙된 대치의 이면에선 내년 총선을 앞둔 정계개편 전망과 관련해 당의 울타리 강화나 이념논쟁을 통한 수구 고립화 등 여야의 기본전략을 읽어내기도 어렵지 않다.

 국회 정보위가 냉전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념의 잣대 위주로 인사검증을 시도한 데 대해 잘했다고 하기 어렵듯이 청문회 도입취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하며 강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노 대통령의 행동도 바람직하지 않다. 동시에 법적 기속력 없는 정보위 판단을 대통령이 거부했다해서 추경안 연계나 해임안 추진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인 야당의 태도도 지나치다 하지않을 수 없다. 일단은 새로 도입된 이른바 "빅4"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을 재점검, 보완하고 현 상태에서 최대한 정치적 절충점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아마도 그 첫번째 시금석은 국정원 후속인사가 될 전망이 크다. 무엇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기세싸움을 벌이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핵보유를 선언한 북한이나 사스 대책 등 눈앞의 현안들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는 점을 먼저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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