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아름다운 건 산중에 사는 소승이나,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는 재가에 있어 똑같이 공감하는 시각적 감상일 것이다.

 겨우내 빈 가지만을 내보이다가도 봄이 되면 제가 먼저 알아 연한 잎새를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듯 작은 잎새들을 보며 한 그루의 나무를, 한 포기의 꽃을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을 그려보게 된다. 잎새를 틔워내기 위한 노력은 이미 견실한 뿌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며 그 뿌리는 무성하게 가지를 올리고 잎새로 열매로 제 구실을 해낼 때 그 만큼의 깊이를 더해 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불러왔던 것 같다. 가정의 달을 5월로 정한 데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 등 모든 기념일이 가족 구성원의 범주 내에 있는 까닭에 기초하지 않았나 하는 통념적 발상을 갖게 된다. 어쩌면 가장 쉬운 연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승은 감히 그런 생각을 보태 본다. 가장 어린 영혼들이 자라 ‘어린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 것과 청소년기를 지나 비로소 독립적 사고를 지닐 수 있는 ‘성년’, 그러한 자녀들에게서 부모됨을 존중해 맞이하는 ‘어버이날’, 그리고 그 모든 대상에게서 스승임을 인정받고 존경하는 ‘스승의 날’ 등의 기념일은 신록의 충만과 마음의 여유, 5월이 갖는 안정과 혜택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싶은 연유다.

 더욱이 나로부터 출발해 우리라는 가장 기초단위를 구성하는 가정은 하나의 완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의 잣대로도 충분히 감지하게 된다. 그런 기초단위인 가정 안에서는 피상적인 여러 요소들도 실질적 요소를 갖추게 되며 인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극히 상투적이긴 해도 가장 효과적인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을 상기해본다. 가정의 화목이 있은 후에야 모든 일이 원만하게 성사된다는 풀이로서 출발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바로 그러한 기초는 신록을 이끌어 내는 뿌리와 줄기에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언제나 ‘우리’를 기준으로 삼는 가족, 혹은 가정은 그 어원에서부터 함께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함께 하는 공동의식은 이기적 발상이 아닌, 원융살림의 의미를 동시에 내품게 된다. 그러니 우리의 기준이 얼마나 크고 넓은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귀한 것들이 모아져 귀중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귀중한 가치는 한가지 요소로서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둘 셋 이상의 요소가 결집되어야만 가치창출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 가정을 도외시하진 못한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가정은 이해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은 주지하다시피 사랑의 집단이며 애정으로 하나된 단위이기 때문이다.

 영롱한 신록을 보며 그 줄기가 혹은 잎이 각기 다르다는 얘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하나였던 까닭에 토양으로부터의 양분과 견실한 뿌리가 우리 삶의 애정으로 비유되며, 이해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흥분처럼 간주되기도 하는 잎새의 틔움, 그리고 그 성한 잎새가 5월 안에 내장돼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동의 의식을 나누는 가정이 더욱 빛나고 가장 적절한 일조량을 투과하는 5월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다.

 모든 자아를 위해 5월을 선사하고자 한다. 스스로 먼저 견실해 지라고, 그리고 먼저 ‘우리’였음을 수순한 진리인 양 받아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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