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리 요도(寥島)

어음리(於音里)는 본래 언양군 상북면 지역으로, 너른 들이 있으므로 너리미·나리미라 불렀다. 어음상리(上里)와 어음하리(下里)의 두 행정마을이 있으며 이를 줄여 어상·어하라고 부르고 있다.

 어음리는 화장산을 배경으로 남쪽은 남천내(南川), 북쪽은 고헌산에서 발원한 감천(坎川·감내 거랑)이 동리를 둘러싸고 흘러 최하단부에서 양수(兩水)가 합류되며, 여기에 형성된 삼각주를 요도(蓼島)라 한다. 요도는 그 모습이 마치 배가 떠가는 듯한 행주형(行舟形)으로, 요도 마을 중앙에는 아직도 짐대가 두 곳 있다.

 요도지신(蓼島地神)은 음력 정월 보름에 어음리에서 행해지는 당신제(堂神祭)에서 어음상리의 신위로서 남신(男神)이며, 이사신(里社神)은 여신(女神)으로 어음하리의 신위다. 이들 당사신(堂社神)은 서로 부부지간으로 남신인 요도지신에게는 곡자주(막걸리)를, 여신인 이사신에게는 감주(甘酒)를 마시게 한다.

 요도는 배산(背山)이 흡사 주장고모(走獐顧母·달아나는 노루가 뒤돌아보는 모습)의 형세를 띠고 있다고 해서 어음(於音)으로 개칭했는데, 이것은 어음(於音)의 우리말 "느리미·너리미"에 대한 유래를 말해 주는 것이다. 어음의 뒷산을 주장고모라 하는 것은 고모산과 고무재가 뒷받침해 주고 있다. 어음 동편의 산을 고모산, 어음하리에서 반천(盤泉)으로 넘는 재(嶺)를 고무재라 하는데 고무재는 고모재(顧母嶺)가 변한 말로 둘 다 고모에서 나온 이름이다. 노루를 옛날에는 "나리"라 하였고, 지금도 "노리"라고도 한다. 또한 암노루는 "느렁"이라 한다. 노루가 갖고 있는 뜻이나 음이 옛 지명에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며, "장(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요도는 1376년(우왕 2)에 정몽주(鄭夢周) 선생이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으로 있을 때 이인임 등의 배명친원(排明親元) 외교정책을 반대하다 유배됐던 곳이다. 울주의 요도로 귀양 가라는 명을 받고 울주에 와서 요도라는 섬을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그러한 섬은 없었다. 그러다 언양현에 요도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그 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고 한다.

 학문적 경지가 높고 천문지리에 통달한 정몽주 선생 같은 분이 위치 확인에 허점을 보였다기 보다는 초기단계에서 요도를 섬 이름으로 착각한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주거형태의 절반을 넘었다는 아파트 이름도 꽤나 혼란스럽다. 울산사람이 서울 도곡동에 있는 "타워 팰리스("탑의 궁전"이란 뜻의 고층아파트)"를 찾으라면 왕궁이나 높은 탑을 떠올리며 잠깐 헤매는 일은 없을까. 정몽주 선생이 요도를 떠나서도 내내 그 일을 생각하며 웃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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