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자녀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운 신봉선 여사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선정한 것이지만 집을 찾았을 때 영부인 권양숙 여사의 축전을 받아 읽고 있던 신여사는 "아들을 잘 키웠다고 하면 며느리들이 욕한다"며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신여사는 "재동이와 수동이(울산대 근무) 두 아들들이 사회에서는 잘 하지만 남편으로서는 영 아닌 것 같다"며 "힘들 때 기대고 싶은 든든한 벽같은 큰 며느리와 언몸을 녹여줄듯한 솜이불 같은 작은 며느리에게 미안할 따름"이라 했다.
울산시 북구 농소 가대에서 태어나 지금은 고향과 가까운 중구 다운동에 살고 있는 신여사는 "안그래도 더 늙으면 못갈 것 같아 이번달에 서울 큰 아들집에 한번 가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장한어머니상을 받은 소감은.
"한 1주일전 재동이로 부터 수상소식을 듣고 "남편이 아프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이 상을 탔겠나"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픈 남편과 생업으로 바쁜 엄마 때문에 주눅들까봐 한번도 꾸짖어보지 못하고 키웠던 아이들 때문에 며느리들이 고생하고 있다"
-큰아들 박재동 화백은 어땠는 지.
"공부를 참 잘하고 자기가 마음 먹은 것은 반드시 하고야 말았던 큰 아들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미대를 희망했고 남편은 그런 아들에게 의대나 법대를 고집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세상 살아갈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에 결국 남편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남편이 군대생활 4년을 마치고 돌아와 보낸 3~4년은 신혼부부처럼 행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남편이 아프고 고단하게 일을 하면서도 한번도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부산을 떠나 다시 고향 울산에는 온지는.
"부산에서 15년을 살고, 반구동에서 15년을 살았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97년에 입주해 6월이 되면 만 6년째 살고 있다. 처음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겼을 때는 어색하더니 갈수록 정이 든다. 이집에서 15년은 채워 살아야 겠다"
-30년간 장사를 하다가 그만뒀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남편 병수발과 아이들 키우느라 제대로 큰 며느리 역할을 못했다. 나 대신 늘 큰 며느리 역할을 했던 동서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일을 그만두고는 5~6년간 열심히 농사일을 거들었다. 요즘은 책읽고, 짬짬이 글을 쓰며 주말마다 성당에 나가고 있다" 송희영 shy@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