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일상적인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 그것은 무엇보다 가족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한다. 역사상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무상의 애정과 헌신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겠는가? 절대적 의존상태에 있는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라고, 그렇게 자란 아이는 힘없어진 부모를 부양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공생의 원리’가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지 싶다. 무상의 헌신과 나눔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 바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모습이며 또한 가장 소망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가족이 흔들리고 있다. 근대 핵가족 하에서 가족의 일상은 "가족으로서의 애정’과 "가족으로서의 의무’가 일방적인 것으로 되어버리고 있다. 흔히 말하는 내리사랑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부모에게 과연 어떻게 대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보면, 그저 무상의 헌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 밖에 없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현재 우리의 부모들은 가족과 사회의 보살핌으로부터 조금씩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1960년대 42.4세에서 1995년에는 73.5세로 증가했다. 30년 전의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3.1%에 불과하던 것이 30년 후에는 20%까지 간다고 한다. 선진국 어디보다도 고령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그만큼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도 심각함을 의미한다. 또하나의 문제점은 80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기고령자는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고 생활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우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부모들 세대는 정말 가장 많이 헌신하고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세대가 아닌가도 생각된다. 60년대와 70년대의 그 어렵고 바빴던 시절에 이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루도록 헌신했던 세대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가족은 근대 도시생활양식으로 바뀌어 가면서, 점차적으로 가족에 의한 부양이라고 하는 규범은 희박해져가고 있고, 2008년이 되어야 현실화되는 연금도 IIMF 때문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라 사회로부터의 혜택과 보상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의 부모의 노후를 우리는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세금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는 공적서비스에 의존하는 북유럽, 금전을 기반으로 한 실버비지니스에 의존하는 미국에 비하여, 한국은 애정을 그 이념으로 하는 가족부양이 특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애정이라고 하는 이념 뒤에는 맞벌이 부부의 뒷바라지 양육과 가사를 도맡아 하는 허리 굽은 모친의 모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움직일 수 있을 때 자식들을 위해서 뭔가 라도 하는 기쁨이 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 아니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말로 우리들의 늙은 모친과 부친을 공경하며 애정으로 그 의무를 다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그렇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부모들의 등을 조금은 펴고 쉴 수 있게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이 모든 것을 떠맡을 수는 없다. 전적으로 가족에 의해서 부양될 수 있는 것은 정말 경제적 능력이 있는 층의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요즘의 현실에서는 전적으로 부양에만 전념 할 수 있는 층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빈자리를 사회는 채워줘야만 할 것이다.

 사람이 너무 지치고 짐이 무거우면 도중에 그 짐을 놓아버리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너무 지치지 않도록, 그 짐을 사회는 조금 나누어서 지는 노력을 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가족사랑이 일상적인 위대성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조금씩만 더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다. 만약 가족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짐을 일방적으로 지기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우리사회가 또 한번 우리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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