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을 훌쩍 넘은 어머니를 홀로 남겨둔채 울산에 살은 지도 벌써 15년이 흘렸다. 해마다 푸르름이 싱싱한 5월은 찾아오건만 불효의 마음은 바뀌지 않고 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전화기로 들어보는 노모의 허약한 목소리에 가슴만 멍든다. "난 괜찮으니 너희들이나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늘 한결같은 사랑이다.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뒤에 드리운 창밖의 신록은 진정 눈이 부시다.

 요 며칠새 봄비가 촉촉히 내렸다. 비오는 날씨도 아랑곳없이 어버이날 행사는 곳곳에서 치뤄졌다. 손주 손녀들의 고사리 손으로 달아준 카네이션을 자랑삼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노래가락이 위안잔치를 흥겹게 했다.

 그리고 지난 5일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어린이날을 보냈다. 백화점과 공원, 식당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분위기를 살린 아기자기한 행사가 펼쳐졌다. 하루만이라도 맘껏 동심의 나래를 펼쳐보라며 목청껏 외치는 어른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며 마냥 순진하게 뛰놀던 어린이들. 이날 만큼은 이들의 세상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행사 한켠에서는 말못할 고민과 아픔을 안고있는 "친구"의 모습과 더불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소중한 행사도 있었다.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어린이를 위한 사랑나눔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진 홍보전을 펼치면서 아동학대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놀라움과 함께 가슴이 미어지는 끔찍한 사진들도 있었지만 전달되는 메시지는 남달랐다.

 아동학대의 사례는 상식과 선입견을 뛰어 넘는다.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얘기도 된다. "사회·경제적으로 낙오됐거나 인간관계의 파탄을 겪은 친부모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녀를 학대한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가 아동학대의 큰 흐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복지부에 신고된 학대사례를 보면 가해자의 80%가 친부모이고 아동학대의 장소도 80%가 자기 집이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경기불황이 가속화되고 신용불량자가 늘면서 "고아 아닌 고아"들이 덩달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소위 "카드빚 때문에 버려진 아이"들이다. 이쯤되면 가족, 가정이라는 보호막은 무의미하다는 얘기가 나올법 하다.

 그렇잖아도 요즘 주변에서 들리는 가정의 모습은 평범하지가 않다. 줄당기기라도 하듯 팽팽하게 양극화로 치닫는 모습이다. 한 쪽은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아이들이 숨쉴틈없이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들이 무관심속에 버림받고 있다. 자식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는 과보호 가정과 돈에 쪼들려 아이들을 내몰라라하는 가정이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이 한해 이혼 12만쌍, 이혼률 세계 2위, 10년 전 보다 7배나 늘어난 황혼 이혼률과 같은 통계를 보더라도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틈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아이의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행동, 또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키워가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 흔들리는 가정은 바로 이러한 청소년 문제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 문제의 근원이 된다.

 그래서 기대는 곳이 학교 교육이다. 가정교육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고 인성을 바로잡아 나가는 곳이 우리의 실정에서 학교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어떤가. 교단갈등속에 편가르기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심지어 정치화 현상까지 표출되면서 학생들의 학습권 마저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해 답답할 뿐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건강한 가정이 필수겠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학교가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모두에게 최상의 선물이 되기위해서다.

 5월이 되면 자라는 아이들에게 보고싶은 어머니 모습과 함께 찾아 뵙고 싶은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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