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벌써 3여년이 지나고 있다. 20세기는 냉전과 대립, 그리고 경쟁의 시대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평화와 화해의 시대라고 희망차게 외치던 것들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종결되었나 싶더니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위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세기말 비관론이 득세를 하던 1999년을 무사히 보내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희망하면서 21세기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9·11테러사건과 이라크전, 그리고 총체적 불황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세계경제의 불투명한 전망 등 많은 문제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해결을 유보한 채 남아있다.

 국내만하더라도 대화와 합의를 기조로 하는 참여정부가 힘차게 발돋움한 지금 주5일제근무와 비정규직근로자 노동조합설립문제, 그리고 화물연대파업 등을 둘러싸고 노동계는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과 대립은 일단락되지만 관리사회하에서 일반화되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 및 감시시스템과 인권문제라고 하는 현대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생활 곳곳에서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계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문제소재의 시비보다는 교사들과 여타 교육담당자들의 현재와 같은 문제제기 및 해결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의 고민거리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참으로 갈등도 많고 문제도 많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같은 대립투쟁형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갈등 중 많은 것은 제도개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제도개선이 절실한 과제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이 적합한 제도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을 제도의 박물관이라고 칭할까. 한국의 제도변화를 보면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유럽, 일본 등 선진적인 제도는 다 들어 있다는 진담어린 농담을 하던 외국인 친구가 생각난다.

 그런데도 문제만 있으면 어떤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만 몰두한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전시행정이 범람하던 과거에는 선진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문제를 해결하였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긍정적인 쪽으로 판단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시민의식이 상대적으로 성숙한 사회, 전혀 문화의식이나 행정환경이 다른 나라의 제도를 도입해 올 때는 그 차이만큼 드러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따라야만 할 것이다.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고민이 적었던 것이 현재 우리나라가 처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제도를 새롭게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방식에는 나름대로 의의는 충분히 있지만 그것보다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제도를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정부 및 행정의 적극적인 실행마인드와, 또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시민의 소양과 수용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영상이 하나 있다. 목표점을 향해 끊임없이 우직할 정도로 쉼 없이 기어가고 있는 우둔한 거북이의 모습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이야기에서의 거북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것이 거북이의 우직한 끈기와 성실함이 결핍되어서 빚어진 문제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되듯이, 어떠한 혁신과 변화도 아무런 축적도 없이 비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상이치가 아닐까 한다. 재주 많고 발 빠른 토끼처럼 앞서 도약했지만 원래의 목표를 망각하고 단기적인 성과에 만족하고 교만해하는 토끼의 실패를 다시 한번만 더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호흡을 좀 길고 깊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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