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열린 회담에서 볼썽 사나운 광경이 연출돼 실망스럽다. 20일 개최된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첫 날 회의에서 북측 단장이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불쾌감을 드러냈고 북측 발언에 대해 남측 대표단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회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남측 대표단은 북측이 회담장에서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을 문제삼아 비난공세를 펼치고, 당초 비공개로 약속했던 기조발언 내용을 자국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상호신뢰와 상호존중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고, 이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1일 오전 10∼12시와 오후 5∼6시로 예정됐던 제2,3차 전체회의도 열리지 못했다.

 어제 첫 전체회의에서 북측 단장이 했다는 문제성 발언은 "남북관계가 영(零)으로 될 것", "남측이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할 것"이라는 등 다분히 위협적인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측 대표단은 "이 대목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라며 성의있는 답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무산 위기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이 전한 발언내용을 보면 "만약 남측이 핵문제의 추가적인 조치요 하면서 대결방향으로 나간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대결방향으로 나간다면 남북관계가 남북 정상회담 이전으로 후퇴할 수 있고 대결로 인한 충돌이 생겨날 경우 남쪽에서도 재난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앞뒤 문맥을 보면 회담 시작 전부터 예상돼온 북측의 반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남측 면전에서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 낸 것은 사려깊지 못한 처사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직설적이고 구어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북측의 언어습관이지만 공식 회담 석상에서 자기만의 관행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성숙된 자세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협상이나 회담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이번 경우를 보면 몇 년 전 "서울 불바다" 발언 소동이 떠오른다. 당시 북측은 자기식대로 할 말을 했다고 하겠지만 남측에는 발언 내용이 거두절미된 채 전달됐고, 발언 진상이야 어쨌든 대북 감정이 극도로 악화돼 한동안 냉각기를 거쳐야 했다. 남북 모두 "불바다" 소동을 되돌아보고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초래될 수 있는 악영향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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