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성공하려고 시를 쓴 건 아니다

물살같이 가슴에 아려오는 것 있어 시를 썼다

출세하려고 시를 쓴 건 아니다

슬픔이 가슴을 앨 때 그 슬픔 달래려고

시를 썼다

내 이제 시를 쓴 지 삼십 년

돌아보면 돌밭과 자갈밭에 뿌린 눈물 흔적

지워지지 않고 있지만

나는 눈물을 이슬처럼 맑게 헹구고

아픈 발을 보료처럼 쓰다듬으며 걸어왔다

그러나 노래처럼 나를 불러주는 것

이기는 일보다 지는 일이 더 아름다움을

깨우쳐준 것은 시 뿐이다

나무처럼 내 물음에 손 흔들어주는 것은

시 뿐이다.

고요의 힘인, 삶의 탕약인

시란 무엇인가. 시가 우리 삶에 무슨 소용인가. 영국 시인 루이스의 말에 의하면 시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묻는 것은 무지개의 용도에 대해, 바다나 축구경기의 용도에 대해 묻는 것과 같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그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성정(性情)을 도야(陶冶)하려면 시를 읊는 것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출세를 하려고 시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더러 그러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출세도 성공도 바라지 않고 ‘물살같이 가슴에 아려오는’ ‘고요의 힘’ ‘삶의 탕약’이 무언지. 30년을 시를 쓴들 어이 다 안다 하랴.

강세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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