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주) 1야드 기술관리부 잠수팀에 근무하고 있는 한춘근(55·울산시 동구 화정동)씨의 작업장은 바닷속이다. 한씨의 직업은 유별나다. 지상의 많고 많은 직업을 마다하고 바다를 택한 한씨. 한씨는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는 그가 걸어온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제 고향은 울산 방어진입니다. 학교는 경남 삼천포에서 마쳤구요. 포항에 있는 해병대 특수수색대를 제대했습니다. 이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1976년 현대중공업 잠수팀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고향도, 자라온 곳도, 군대도 바다와 인연이 참 깊은 것 같네요"

 한씨는 4명의 동료와 함께 일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배가 도크에 진수된 후 1~2달 뒤 배 표면과 스크루에 낀 이끼와 해조류를 제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몇 천톤급이나 되는 배에 이끼가 달라 붙었다 해서 배에 영향이나 줄까"라고 말하는데 그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큰 배라도 표면에 이끼가 끼면 속도에 지장을 받습니다. 특히 스크루 같은 경우에 해조류가 많이 엉켜있으면 배가 움직이는데 많은 장애를 줄 수 있습니다"

 한씨와 그의 동료들은 선주가 만족할 때까지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몇 천톤급의 배를 만드는 공정 가운데 한씨가 맡은 일은 미미하지만 한씨는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이것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 그의 성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는 일에 있어 진정한 성취의 보람은 남들이 인정해 줘서가 아니라 자신이 최선을 다해 스스로 만족할 때 최고가 된다고 말한다.

 "남들의 인정을 받고 못받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기본을 알고 지키자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것을 경시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다리가 무너지고 멀쩡하던 지하철에 불이나 인명이 상하는 것 같아요. 남들이 시시하다 여기고 무시하는 일들이 따지고 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일입니다"

 한씨는 15년전 같은 이유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과 그 주변 동네의 방범과 교통정리부터 해보자는 것이 한씨의 생각이었다. 이때 자신이 현대중공업 잠수팀에 입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를 마련해 준 해병대 전우들이 한씨와 동참했다. 한씨는 그들이 아직도 고맙다고 말한다.

 "지금도 방범활동과 교통정리가 대단한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제 주위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해병전우회 회원들이 함께 동참해 수중정화 활동까지 규모가 커지게 됐습니다. 이런 활동을 한다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받을 때마다 부끄럽고 어깨가 무겁습니다"

 한씨는 현재 250여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현대중공업 연합 잠수동호회 회장이다. 그리고 해병전우회 회원들과 함께 하는 방범·교통정리 외에 매년 여름 방어진항과 일산해수욕장에서 수중정화 활동도 벌이고 있다. 또 한달에 두 번씩 태화강과 회야댐에서 자연보호 활동도 하고 있다. 오는 6월5일 바다의 날에는 지금까지 활동해 온 자료사진을 시청에 전시하고, 직접 태화강 속으로 들어가 정화활동도 벌일 예정이다.

 "바닷속에서 작업을 하면서 시야가 흐려 일의 속도가 느려질 때 가장 답답하고 아쉬웠습니다. 그 때마다 "내가 일하는 작업장도 이런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각이 제가 수중정화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바닷속에서 일할 때 둔탁하게 들려오는 기계소리와 망치소리가 지금도 정겹다는 한씨는 현재 한국잠수협회 울산시지부 지부장일도 맡고 있다. 바쁜 사람이다. 정년퇴직을 4년 앞두고 부인 이옥희(48)씨는 노후를 걱정하지만 그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원래 제 나이로 치면 내년이 환갑이지만 아직은 건강에 자신있습니다. 부인의 걱정이 염려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퇴직 후에도 제 생활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한씨 외에 한씨의 자녀 모두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전 결혼한 아들 창희(32)씨는 중전기 배선설계부에 근무하고 있고, 딸 단심(29)씨는 플랜트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말 그대로 현대중공업 가족이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대한 고마움을 꼭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회사는 제 삶과 모든 활동의 든든한 뒷받침이 돼 주었기 때문입니다"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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