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유지나 교수 ‘호모루덴스로 살기’ 강연

▲ 9일 CK아트홀에서 열린 본사 주최 제1기 비즈니스 컬처스쿨에서 영화평론가인 유지나 동국대 교수가 ‘호모루덴스로 살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출세지상주의 현실 비판...자신이 좋아하는 행위로 제2의 인생 개척 강조

“즐거울 권리, 행복할 권리를 추구합시다. ‘일하는 기계’로 살지말고 잊었던 인간본연의 습성, ‘호모루덴스(유희의 인간)’를 되찾자는 겁니다.”

9일 오후 7시 CK아트홀. 본사가 주최하는 명품특강 제1기 비즈니스 컬처스쿨에서 유지나 영화평론가(동국대 교수)는 시네토크 ‘호모루덴스로 살기­자신의 내면과 접속하라’를 통해 이처럼 주장했다.

호모루덴스는 유희하는 인간, 놀이(예술)하는 인간이다. 어린시절 누구나 놀이에 빠져살지만, 어른이 되면서 억압적이고 무거운 출세강박에 매몰돼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억압이 갈수록 심해져 어린이와 청소년마저 과중한 스펙쌓기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유 교수는 “자신의 속내와 다시 만나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행위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열어야 한다”며 “즐겁게 살기 프로젝트, 즉 호모루덴스화(化)는 정년 후에서 30~40년을 더 살아야 할 우리 시대 필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말은 쉽지만, 실행에 옮기기까지 장애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호모루덴스를 향한 실제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

“퇴직을 앞둔 모 경찰서장님이 퇴직기념식으로 록콘서트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 시선 때문에 망설이고 계셨죠.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길 것이라고 용기를 드렸습니다. 아마도 제2의 인생잔치를 펼치셨을 겁니다. 작은 시도부터 천천히 시작하세요. 진정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세요.”

“일하는 기계들, 예술로 치유 받아야”

유지나 교수 씨네토크 강연 요약

인간은 생각하는 지혜로운 존재이기에 ‘호모 사피엔스’로 불린다. 그런데 실제로 그 생각의 내용이란 게 돈을 벌어 성공하고 출세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돈 벌기용 인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0년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두 가지에서 일등이다. 가장 오랫 동안 일하며, 가장 자살률도 높다. 역사는 일등만 기억한다는 어떤 대기업 광고대로라면, 한국은 가장 불행한 나라로 역사에 기억될 판이다.

‘호모 루덴스’ 정신의 복원이 절실한 때다. 나치의 지배와 전쟁의 공포로 암울했던 시절, 네덜란드 인문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론>을 펴냈다. 문화의 본질을 놀이에서 찾아낸 그는 삶의 의미와 행복 역시 놀이로부터 나온다고 역설한다. 호모 루덴스는 달리 말하면 예술하는 인간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길들여진 자신을 일상적 예술행위로 치유하고 구원하는 일을 스스로 해내야 한다.

보다 이해하기 쉽게 영화 속에서 호모 루덴스로 자아를 찾은 사례를 찾아보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남루한 노년 여성의 ‘시 쓰기’는 루덴스 정신의 복원이다. ‘즐거운 인생’이나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같은 영화에서는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 남성들이 왕년에 탐닉했던 음악놀이를 되찾아 즐거운 제2의 인생 살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찾아보면 이런 영화들은 즐비하다. 프랑스 영화 ‘세라핀’에선 학교에 가본 적도 없는 마을의 가사 도우미 세라핀이 그림그리기로 일상을 구원하는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가 펼쳐진다.

역시 실화에 근거한 ‘일 포스티노’에선 이탈리아 작은 섬의 우편 배달부가 칠레의 망명시인 네루다와 만나 시를 통해 삶을 해방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마을의 매력적인 아가씨를 유혹하는 연애편지를 쓰려고 배운 시지만, 결국 시 쓰기를 통해 인생이 구원을 얻는다. 예술의 힘이다.

다큐멘터리영화 ‘록큰롤 인생’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노라면, 인생은 50부터가 아니라 80부터이다. 마을 공용주택에 사는 노인들이 여가활용으로 노인용 노래를 부르다가 활기찬 록을 만나면서 로큰롤 밴드가 되었다. 노인이 한물 간 인간이 아니라 어떤 노래든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아본 지휘자 밥 실먼의 호모 루덴스 정신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평균연령 80대 초인 이들의 몸은 종합병원이지만 병원에 실려가는 순간에도 노래를 불러 의료진에게 웃음을 준다. 노래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세상의 도덕, 세속적 가치는 삶을 변화시키는데 역부족이다. 그 보다는 자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놀이하는 즐거운 인간으로 살기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즐거운 삶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놀이를 일상과 접속시키는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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