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숲으로 산책을 가려고

집을 막 나서는데

잠깐! 아내가 날 불러 세웠다.

부엌에서 나온 아내는 미나리를 씻다가 발견했다며

달팽이가 붙어있는 미나리 순을 내밀었다

산책 가는 길에 숲에 풀어놓아 주라고.

푸른 미나리 순에 붙어 꼼지락대는

아기 손톱보다 작은 달팽이를

신주처럼 모셔 들고

나는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차도에는 죽음의 공기를 퍼뜨리는

차량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달팽이를 나르는

生命의 수레.

길을 걷다가 내 손에 들린 달팽이를 보니

뿔더듬이를 허공에 쳐들고

느릿느릿 춤을 추고 있었다.

(원, 세상에,

이렇게 느린 춤이 있다니!)

스피드 시대. 속도 경쟁이 치열하다. 더구나 성질 급하고 바쁘기로 소문 난 우리나라 사람들. 길을 나서면 너나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품이 예사롭지가 않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여유(餘裕)라고 한다. 느긋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숨쉬고 느리게 행동하라고 권한다. 미나리 순에 붙은 달팽이를 건네주는 이나, 생명의 수레 역할을 기꺼이 맡아주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렇게 느린 마음으로 푸르고 깊은 숲을 거닐며 사는 이가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보랏빛 향 그윽한 오동나무 숲에 어울리는, 살면서 본보기로 삼을만한 몸짓이 아닌가.

강세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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