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공부하는 노인들 - ③ 미디어로 소통하는 노인들

“할아버지! 저 페북친구 진짜 많죠.”
“페북이 뭐냐? 폐백은 알아도 페북은 모르겠는데.”
“에이, 할아버지. 페북 몰라요? 페.이.스.북”

평소 손자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신세대인 박기순(82) 할아버지는 나름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가 힘에 부친다. 할아버지와 말이 통하지 않는 손자는 줄곧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세대 간의 소통불능. 하지만 해답은 있다. 바로 노인들을 위한 미디어 교육이다. 미디어 교육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노인들을 만나본다.

중구지역자활센터·문수실버복지관 등
단순 컴퓨터 강좌 넘어 SNS 활용법 교육
타지역 친구들과도 인터넷서 쉽게 교류
직접 업로드한 사진으로 전시회 열기도

◇컴퓨터에 한정된 미디어 교육 = 최근의 노인 미디어 교육은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다. 기술을 넘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만드는 교육이다. 그리고 그 속에 이야기를 담아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교육이다. 현재 울산

시내 노인복지관에서 이뤄지는 노인 미디어 교육들도 대부분 컴퓨터 교육에 한정돼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표 참조) 노인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게 초·중·고급반으로 나뉘어 한글, 엑셀, 워드 등을 공부하고 인터넷 활용법을 배운다.

이렇게 정보화 교육 일색인 노인 미디어 교육을 바꾸기 위해 지역의 공공미디어센터들이 발 벗고 나섰다. 첫 시작은 2007년 중구지역자활센터에서 였다. 울산MBC시청자미디어센터가 교육을 담당했다. 당시 교육에 참가한 노인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활용한 사진 촬영 및 편집을 배웠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세상도 변하고 미디어도 변했다. 당연히 교육내용도 확 바뀌었다. 단순한 사진 촬영 위주였던 수업 내용이 사진을 촬영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표현하는 단계까지 진일보한 것이다.

◇미디어로 소통 공간 확보 = 올해는 문수실버복지관에서도 울산MBC시청자미디어센터의 교육이 이뤄졌다. 지난 3월부터 총 12주간의 교육이었다. 수업의 시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촬영. 노인들은 평소 마음속에 담아 뒀던 이야기들을 사각 프레임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진만 찍고 혼자 간직해선 안 된다. 이를 공유할 방법도 알아야 한다.

동시다발적인 SNS인 ‘트위터’보다 아는 사람끼리 속닥속닥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는 SNS인 ‘페이스북’의 활용법을 배웠다. 노인들은 페이스북 담벼락에 하루 일과를 적기도 하고 손자와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문수실버복지관 노인들과 같은 미디어 교육을 받고 있는 부산화명종합사회복지관 노인들과 ‘페북 친구’도 맺었다. 수업의 대미를 장식한 건 노인들 스스로가 찍고 업로드한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사진전이었다.

수업이 끝난 지금, 수강생 17명 중 6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 에세이를 대형 패널로 제작해 문수실버복지관 내에 전시하고 있다.

노인들의 교육을 맡았던 울산MBC미디어센터 송상민 교육실장은 “노인의 미디어 교육은 젊은이들만 미디어를 활용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도 충분히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문수실버복지관 평생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이주연 사회복지사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집에서 사진이나 TV를 수동적으로 보고 듣기만 하는데 이런 교육을 통해 일상생활의 친숙한 미디어들을 생각의 표현 도구로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어르신들의 인식 전환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노인 미디어 교육의 미래= 노인 미디어 교육이 발달한 서울에서는 이제 사진을 넘어 영상의 영역까지 노인들이 주축이 돼 활동 중이다.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주최하는 서울노인영화제가 대표적인 노인 미디어 활동이다. 올해로 4회를 맞는 서울노인영화제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연출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노인의 고독이나 현실 등을 다큐멘터리, 영화, 뉴스 등으로 제작해 출품한다.

영상으로까지 미디어 교육이 확대된 것은 뉴미디어를 통해 시대에 뒤쳐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울산지역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컴퓨터 활용법에서 SNS 교육으로 변화했듯이 뉴미디어의 활용을 배우기를 원하는 노인들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에 위치한 공공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노인 미디어 교육을 담당하는 김희영씨는 “앞으로 다가올 고령 사회에서 노인세대와 그 외의 세대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미디어 교육은 꼭 필요한 준비다”고 했다. 박소영기자 sysay@ksilbo.co.kr

■ 울산지역 노인복지관 미디어교육 현황 <2011년 상반기>

시설명 교육 내용 개설반 정원
울산광역시
노인복지관
인터넷, 포토샵,
엑셀 등
초·중·고급
총 6개반
각 20명
남구노인복지관 강좌 없음    
문수실버복지관 한글·워드 등 왕초보·초·중·고급 총 7개반 각 16명
왕초보-10명
페이스북
구글 크롬 등
총 1개반 각18명
동구노인복지관 한글
인터넷 등
한글·인터넷 총 4개반 각 11명
북구노인복지관 한글, 엑셀 등 초·중급 총 2개반 각 15명
울주남부
노인복지관
한글
사진편집 등
왕초보·초·중급 총 5개반 각 15명
울주서부
노인복지관
인터넷활용 왕초보·초·중·고급 총 8개반 각 12명

‘멋쟁이 어르신’을 소개합니다 -‘페이스북 전도사’ 김영길 할아버지
“SNS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일 즐거워요”
“미디어교육 수강…나이 중요치않아”
스마트폰으로 외국 친구들과도 교감

“페이스북(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내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라요. 어떻게 페이스북을 아냐고. 배움에 나이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지난 15일까지 문수실버복지관에서 미디어 교육을 수강한 김영길(65) 할아버지는 자칭 ‘페이스북 전도사’다. 젊은이들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다는 스마트폰을 손에 꽉 쥐고 틈날 때마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확인한다.

김 할아버지도 처음엔 ‘독수리 타법’에서 시작했다. 2008년 문수실버복지관에서 컴퓨터 교육 기초반을 수강한 이후 쭉 컴퓨터 교육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미디어 교육을 접한 것이다. 다양한 뉴미디어에 대해 공부하고 난 후 아예 컴퓨터에 딱 붙어살았다. 영어와 일본어에 관심이 많은 할아버지가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김 할아버지의 페이스북 담벼락에는 수업시간에 찍은 사진들,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올라와 있다. 할아버지의 ‘페북친구’들이 김 할아버지가 올린 사진에 공감하는 ‘좋아요’ 손가락을 누르기도 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사진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수준급이다. 미디어 교육이 끝난 후 열린 사진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88㎏의 거구에서 지금의 탄탄한 몸으로 바뀐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록이다. 물론 페이스북에도 ‘온라인 사진전’을 열었다.

“집에만 있었다면 페이스북이 뭔지, 구글 크롬이 뭔지 알게 뭡니까. 몰라도 밥만 잘 먹어지는걸요. 하지만 새로운 걸 배워 그것을 쓰면서 세상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안다면 아마 집에만 있을 순 없을 겁니다.”

적극적으로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딸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아예 스마트폰을 할아버지께 선물했다. “딸이 사준 스마트폰 덕분에 이제 밖에서도 페이스북 댓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 할아버지의 페이스북 친구는 총 10명.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친구를 맺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부감은 없다.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부산화명종합사회복지관 친구들과 올 여름 기장에서 장어를 먹기로 했는데 설렙니다. 온라인으로 사귄 친구들을 직접 만나면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70세가 되는 해, 세계 일주를 할 계획이라는 김 할아버지의 각오가 남다르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이제 직접 ‘통’하러 가야죠. 세계 일주 사진을 영상으로 만들어 함께 보고 싶습니다.”

박소영기자 sysay@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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