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를 살리기 위한 벼랑 끝 호소

▲ 김형오 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해도 해도 너무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집이 타들어 간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불을 끄려 하지 않는다. 논의만 무성할 뿐 행동이 없다. 반구대 암각화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지난 3월,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암각화 침수를 막기 위해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대신 부족한 생활용수는 울산권 맑은 물 공급 사업을 통해 충당키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반가운 한편 걱정스러웠다. 조속한 시행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가는 암각화의 훼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7월 6일, 울산시와 문화재청, 국회, 국무총리실 등 관련 부처들이 모두 모여 대책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은 ‘다음에 다시’였다. 이게 무슨 짓들인가. ‘끝장 토론’이라도 벌여 즉각 조치를 취했어야 할 긴급 현안은 결국 아무런 대책이나 합의 없이 다음으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이럴 거라면 합동 회의는 왜 열었는가. 그 내용을 보면 현대판 ‘금수회의록’이 따로 없다.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울 뿐 양보는 없다. 인공호흡이 시급한 환자를 앞에 두고 탁상공론만을 일삼고 있다.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조언한다. 울산시는 당장 물 빼기 작업에 들어가라. 후속 대책은 그 뒤에 논의하라. 안 그러면 울산시는 의지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문화재청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전문가 집단 맞는가. 차수벽과 수로 변경은 주변 환경을 훼손한다고? 우리가 보호하려는 것은 인류 문화유적인 ‘바위그림’들이지, 암각화가 사라져 버린 바윗덩어리가 아니다. 그런 넋두리로 시간 낭비하는 동안 사망선고를 코앞에 둔 암각화는 통곡을 하고 있다. 울산에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국토부의 발빠른 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인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총리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뻔한 하소연이나 듣자고 거기까지 내려갔는가. 이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리더십과 조정 능력을 상실한 정부는, 공무원은 사표를 써야 한다.

나는 국회의장 재임 중 두 번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갔다. 처음 갔을 때는 물에 완전히 잠긴 모습이었다. 지난해 3월, 다시 찾아갔을 때는 물이 빠져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암각화를 손으로 더듬으며 심각한 훼손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는 너무나 안타까워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암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작살 박힌 고래는 이미 작살도, 고래도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세계 최초로 고래잡이를 한 민족임을 주장할 근거가 사라지고 있다. 이게 2년 전 일인데, 그 사이 또 얼마나 많은 고래며 동식물들이 사라졌겠는가.

거듭 강조하건대 사정이 아주 급박하다. 허물어진 외양간에 도둑이 들어와 소를 끌고 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언제까지 팔짱만 끼고 있으려는가. 이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와도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왜? 외양간에 새로 들일 소가 없기 때문이다. 한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게 세계적인 문화유산 반구대 암각화이다.

지금 이 순간 답은 하나다. 구차한 핑계는 필요 없다. 우선 당장 물을 빼라. 반구대 암각화의 숨통을 트게 하라. 안 그러면 역사와 선조 앞에, 또한 우리 후손들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 정부와 울산시, 그리고 문화재 관계자 모두 공범자가 되고 만다. 뿐인가, 세계 고고인류학사에도 크나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그렇다, 반구대 암각화를 지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문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김형오 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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