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우울한 노인들 - ① 노인우울증, 어디까지 왔나

#1.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살고 있던 김모(여·75)씨는 지난해 자살을 기도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점점 악화된데다 생활고까지 겹친 탓이다. 하지만 그보다 김씨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증’이었다.

김씨를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사는 “김씨가 하루하루가 힘들고 슬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준 이웃까지 원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2. 최모(여·70)씨는 2009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다. 가족과의 불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재산피해가 원인이었다. 처음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 끝이 아파 병원을 찾았지만, 검사결과 이는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으로 나타났다. 최씨는 현재 2주마다 상담을 받고 있고,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신체질환·배우자 사별 등 원인 다양
노인 스스로 증상 알아채지 못해 방치
전문 관리인력 부족 사회적 연계 필요

◇노인우울증 왜 늘어나나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에 인류를 괴롭히는 10대 질병 중 하나로 우울증을 꼽았다. 2020년에는 우울증이 심장병 다음으로 세계 2위의 질병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아동과 청소년, 성인 뿐 아니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노인 또한 늘어나고 있다.

▲ 울산 북구노인복지관에서는 동구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북구지역 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노인 10명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실시했다. 상담에서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자살생각 척도검사와 함께 심리적 안정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 실시됐다. 울산북구노인복지관 제공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우울증 환자가 2000년 6만366명에서 2009년에는 약 20만 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2008년에는 전체 우울증 환자 중에서 60세 이상 노인이 34.5%를 차지했다.

일반 성인의 우울증과는 달리 노인우울증은 당사자인 본인이 우울증인지 몰라 ‘숨겨진 질병’이 되기 쉽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울산 남구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노인들의 경우, 감정표현이 적고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 등 인지기능의 저하가 함께 나타나 질병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센터나 보건소, 병원 등에서 확인되지 않는 우울증 환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우울증은 신체질환, 배우자와 친인척의 사별, 경제적 손실, 폐경, 학대 등 원인이 다양하다. 독거노인이나 장기 입원환자, 신체질환 환자에서 우울증은 더 많이 나타난다. 주요 특징으로는 피로감과 활력저하, 우울감 2주이상 지속, 체중의 변화, 죄책감, 사고력 및 집중력 저하,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등이 있다.

마더스병원 문석호 정신과장은 “노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소외감과 상실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며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몸의 병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 등 마음의 병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정확한 진단과 지속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노인 본인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높아 치료를 거부하거나, 가족들의 무관심으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 동구정신보건센터는 노인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경로당과 요양원, 복지관 등에 직접 찾아가는 이동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동구정신보건센터 제공

문 과장은 “노인들이 스스로 우울증을 자각해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가 드물고, 치료를 받더라도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있다”며 “치료가 필요하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 6개월 이상 꾸준히 약물치료 및 인지치료를 받아야 한다. 평소에 간단한 척도 검사를 통해 자신의 감정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인자살’의 큰 원인이 우울증이라는 점은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2009년 자살자 1만5000명 중 노인자살은 4000명으로 하루에 10명 이상의 노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역으로 보면 서울 410명, 부산 212명, 대구 124명, 울산은 37명이다.

춘해보건대학 서화정 사회복지과 교수는 “노인자살의 개인·심리적 요인으로 정신장애나 생활사건으로 인해 지속되는 우울상태가 절망감, 자살계획으로 이어진다”며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다각적인 대처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가 노인우울증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

노인우울증이 늘어나면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노인과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와 보건소, 사회복지관과의 연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울산지역에서 우울증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으로는 남구와 울주군, 동구에 정신보건센터가 있다. 하지만 북구와 중구에는 센터 자체가 없고, 정신보건 전문요원 등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동구 정신보건센터 박상훈 팀장은 “동구의 인구가 17만명이고 그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만명 가깝지만, 직원은 6명이 전부다”며 “이동상담과 집단상담, 방문상담을 하는 등 최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인력 부족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노인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을 위한 정신건강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남구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노인들이 우울증에 힘들어하고 있어도 당사자와 가족, 주변 지인들이 상담기관에 연락하지 않아 그냥 방치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센터에 따르면 2011년 상반기에 센터로 직접 연락을 해온 200여건의 상담건수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들의 상담은 11건에 그쳤다. 울주군과 같이 노인인구가 많은 곳에서도 전체 250여건의 상담건수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들의 상담은 22건에 불과했다. 10%도 안되는 수준이다.

울산 지역 정신보건센터와 관계기관에서는 상담 뿐만 아니라 노인들을 직접 찾아가 우울증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예방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동구 정신보건센터는 동구노인복지관과 북구노인복지관 등 지역 기관과 협약식을 맺고 이동상담을 하면서 2011년 상반기에만 289건의 노인상담을 실시했다.

울주군 정신보건센터에서는 ‘노인우울증 예방차트’를 통해 경로당과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에게 우울증 교육을 실시했으며, 울산시 노인보호전문기관도 ‘쉼터’를 운영해 학대 등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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