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우울한 노인들 - 3. 자살을 막자

사회적 고립·질병·배우자와 사별 등으로 유발되는 노인우울증
방치땐 스스로 목숨 끊기도…2009 울산 노인자살 10만명 중 76.4명
체계적인 자살예방 안전망 구축 필요…가족·이웃의 관심이 첫 발

“나는 사실 그동안 참 외로웠어.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식들은 다 내 주변을 떠났고, 의지할 데라곤 오직 아내밖에 없었어. … 늘 함께였던 우리부부가 병으로 인해서 따로 떨어지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네. 내 아내는 겁이 많아서 그 먼 길을 혼자 가기 힘들다네. 내가 같이 가줘야지. 우리는 함께 갈거야.”

▲ 울산 북구종합사회복지관은 노인들의 우울증 극복을 위해 원예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영화로도 제작된 작가 강풀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부부의 이야기를 잔잔히 그리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장군봉은 일흔이 넘으면서 경제적으로 힘겨워지고, 자식들은 장씨 부부를 1년에 한 번도 찾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치매를 앓던 처 조순이가 암말기의 진단을 받자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장군봉은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을 하기에 이른다.

◇노인 우울증 자살로 이어져

노인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 경찰대학교 치안정책연구소의 ‘노인 자살 실태 분석과 예방 대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61세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1989년 788명에서 2008년 4029명으로 20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 2008년 한 조사에 의하면 최근 1년 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노인이 약 150만명, 자살시도를 해봤다는 노인이 약 30만명로 나타났다.

노인자살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우울증’이다. 우울증 환자의 70%정도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울산동구정신보건센터 노인자살예방심포지엄에 따르면 장애를 유발하는 만성적인 질병과 배우자와의 사별, 사회적 고립, 갑작스러운 은퇴나 실직으로 인한 수입감소, 가정불화 등은 노인우울증을 유발하고 자살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심포지엄에 참여한 마인드닥터정신과의원 한치호 원장은 “노인우울증이 노인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며, 노인들의 모든 힘든 여건과 질병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 울산 동구정신보건센터에서는 지난해 11월 노인자살예방 심포지엄을 열고 노인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강연 및 토론회를 가졌다.
노인우울증이 방치되면 자살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원장은 “우울증은 치료 성공률이 높지만 노인의 우울증은 본인조차 질병에 대해 정확히 인지를 하지 못하고, 치료 거부, 가족들의 무관심 등으로 제때 진단 및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노인자살의 경고증후를 보면 첫째, 언어성 증후로 죽고싶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 내가 없으면 가족이 더 편안해 질 것이다는 말을 한다. 둘째, 행동성 증후로 의과대학에 신체기증, 개인업무나 주변정리, 유언 남기거나 유언변경, 보험금과 연금을 수령한다. 셋째, 상황적 증후로 배우자 죽음, 말기질환 진단, 신체질환 치료실패, 과민한 정서반응을 보인다. 넷째, 후기우울증 증상으로 신체기능에 대한 지나친 관심, 자존심 저하, 염세주의, 특별한 이유 없이 공포와 불안을 표현하는 것 등이 있다.

한 원장은 노인자살에 대해 “상담을 하면서 노인들의 심리상태와 성격을 파악해 사전에 자살을 막는게 중요하다”며 “우울과 자살을 상담하는 상담원 양성교육에 힘을 쏟는 등 지역사회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노인자살의 울산지역실태

2009년 통계청에 따르면 울산지역의 표준인구 10만 명당 노인자살률은 서울 57.5명, 부산 64.9명, 대구 60.9명보다 더 높은 76.4명이다. 강원 107.7명과 충남 97.0명에 비해 적은 수치지만 장·단기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자살예방방지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자살을 시도하는 노인이 늘어날 수 있다. 권은영 울산문수실버복지관의 상담담당자는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시도하려는 노인들이 먼저 도와달라고 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지역사회에서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살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자살예방을 위한 긴급전화나 예방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울산지역에 처음으로 자살예방 관련 단체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울산자살예방 네트워크는 오는 9월8일 발족한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자살예방 활동 및 자살방지 안전망 구축을 목적으로 노인자살예방 뿐만 아니라, 자살예방상담센터 설치, 상담자 양성, 자살실태조사 등의 활동을 펼칠 전망이다. 초대위원장으로 선출된 류경민 울산시의원은 “울산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을 크게 환영했다”며 “노인우울이나 자살과 관련해 시청과 소방본부, 정신보건센터 등 다양한 기관과 연계해 사업을 논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또 올해부터 노인 자살예방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는 북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강동지역과 북구 농소권역의 노인 40명을 선정해 사전조사를 실시하고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복지관에서는 자살예방 척도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선별된 노인을 대상으로 원예프로그램, 티테라피(차를 통한 치료)를 실시했다. 이달 말에는 웰다잉 건강강좌를 열 예정이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노인들은 자조모임을 갖고 최종적으로 사후조사를 실시해 프로그램 전·후의 자신의 변화를 직접 검증하는 시간도 갖는다.

동구노인복지관에서도 노인돌보미 8명이 동구지역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225가구에 직접 방문을 하는 등 노인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구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우울함을 호소하는 독거노인을 직접 방문하는 정신건강 이동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박원진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 연계를 통해 독거노인들의 우울감 해소 및 정서지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거노인들의 건강한 노후생활이 이뤄지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춘해대학교 사회복지과 서화정 교수는 “자살예방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며 “홀몸노인이나 독거노인 등 복지관과 경로당을 찾기 힘들만큼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각지대의 노인들에게 더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 상담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자살의 가능성을 가진 고위험군 노인들이 지역사회와 유대관계가 좋아지면 예측된 자살률을 충분히 낮출 수 있고, 지자체와 노인복지관, 정신보건센터, 보건소, 경로당 등 다양한 기관들이 프로그램을 연계해 서비스 개발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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