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에 참 신선한 주례사 기사를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주례 얘기였다. "결혼도 안 해 본 스님이 어떻게 주례를 서느냐"고 늘 정중하게 주례 부탁을 거절하시던 법정 스님이었다. 20년 전 어느 날, 자식처럼 아끼는 유능한 한 젊은이가 자기가 만약 결혼하게 된다면 그 때 주례를 서달라던 간곡한 부탁에 그만, "그 때는 내가 주례를 서야지"" 하며 자신있게 했던 오래 전의 약속 때문에 한 법정 스님의 마지막 주례사였다. 맑은 샘물같은 주례사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새내기 부부에게 법정 스님은 주례사 중에 특이한 숙제를 냈다. 그 숙제는 한 달에 산문집 두 권과 시집 한 권을 꼭 읽으라는 것이었다. 우선 신랑 신부 두 사람은 매월 서점에 가서 각각 산문집을 고르고 읽은 후에는 서로 바꿔서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신랑 신부가 각자 고른 책을 교환해 읽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시집은 함께 소리 내어 가면서 낭낭한 목소리로 읽으라고 당부했다. 낭낭한 목소리로 시를 읽으면 항상 풋풋한 가슴을 지닐 수 있어서 좋고, 또한 삶 자체가 시가 될 수 있고 여유 있는 삶이 되어 좋다는 스님의 얘기였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1년에 36권의 산문집과 시집이 집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것을 먼 훗날 자식들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라는 얘기다.

 얼마나 근사한 주례사인가. 시원한 샘물 한 사발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다. 참으로 법정 스님 다운 주례사다. 우리나라의 그 많은 결혼식장에서 그 많은 훌륭한 주례선생님들이 덕담에 곁들여 신랑 신부들에게 법정 스님 같은 책읽기 약속이 번져 나갔으면 참 좋겠다. 물론 이런 약속을 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독서를 그 이상으로 많이 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꼭 결혼식장의 약속대로 모든 인생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얼마나 복잡하고 또 신기한 곳인가.

 나에게는 법정 스님이야말로 책 읽는 것의 소중함을 알고 또 그 것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잘 실천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는 분으로 느껴졌다.

 학교는 책 읽는 곳이다. 갈수록 치열해 지는 국가간의 경쟁에서 학생들의 독서 실력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독서 실태를 보면 고등학생의 한 학기 독서량이 6.7권이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월 평균 독서량이 겨우 1권 남짓이라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입시 중심의 현실적인 교육환경에서 참으로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 나름대로 학생들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여건 조성과 분위기 조성에 선생님들이 더욱 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학교는 책 읽는 곳이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도서관 만들기도 중요하고, 손에 늘 책을 들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은 학교 만들기도 대단히 중요하다. 아이들은 손에 늘 책이 들려 있는 선생님들을 좋아한다. 나는 요즘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책가방에 책 한 권 넣고 다니며(시집이든 소설책이든), 틈틈이 책을 읽자고 당부한다.

 책을 읽는 일은 어느 한 순간만 읽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오랜 기간 책을 가까이 하려는 노력에 의해, 그 노력한 만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값진 결과 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책이라도 매일 한 순간 진지하게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길만이 책 읽는 방법으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깨우쳐 줘야 한다.

 요즈음 영상세대에게는 다양한 컨텐츠를 갖춘 학교 도서관을 아이들은 선호한다. 정보화 시대를 선도해 가는 도서관 활성화, 그리고 학교에서의 꾸준한 책읽기 지도, 이것이 오늘의 우리 교육에 조그만 숨통 틔우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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