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우울한 노인들 - ④ 지역사회의 울타리 안으로

▲ 울산 북구종합사회복지관과 강동재가어르신복지센터는 지난 7월 우울증 우려군으로 선별된 노인 10명과 함께 집단상담을 진행했다. 강동재가어르신복지센터 제공
김모(여·80)씨는 독극물을 준비했다. 세상을 등지고 싶은 이유에서다. 혼자 살고 있는 김씨는 늘 외로웠다. “아들이 있지만 찾아오는 일은 없어.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면 아예 안받거나 도중에 끊어버려.” 나이가 들어 경제적인 활동도 하지 못하는 김씨는 차상위계층으로 지내고 있다. 그는 마음 뿐만 아니라 몸도 아프다. 다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김씨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김씨는 이같은 사연을 강동재가어르신복지센터(이하 강동센터)에서 진행하는 노인우울증예방교육을 통해 털어놨다. 그 전까지 김씨의 사연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난 김씨는 우울증 척도검사를 받았다. 전문가는 검사지를 토대로 김씨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일대일 상담을 거친 결과 김씨가 독극물을 사놓은 사실이 확인됐고, 우울증과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3개월 동안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김씨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원예치료에서는 꽃화분을 손녀 다루듯 애지중지 만졌다. “평소에 꽃을 좋아해. 여기에 나오니까 친구들도 만나고, 강사님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밝아져.” 김씨는 현재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과 또래모임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털어놓는 등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다.

전문기관 직접관리·특화사업 등 진행
고위험군은 정신보건 전문가 2차상담
예방·홍보활동, 병원연계 치료 병행

◇직접 우울한 노인들 찾아 나서

노인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은 노인 스스로가 우울증을 인지하고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강동센터 오지영 주임은 “노인들 대부분이 상담을 진행하면서 우울증을 발견한다”며 “우울증 검사를 해보니 17명의 노인들 중 1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경미한 우울증을 포함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고, 자살에 대해서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울산북구종합사회복지관은 상담 접수를 기다리기보다 직접 대면상담을 하고 치료를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복지관은 북구 농소·강동센터와 연계해 노인우울증 및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4월 말부터 현재까지 자살예방교육과 자조모임, 우울증 치료 등을 진행했고, 오는 9월과 10월엔 노인강좌 및 사후검사를 실시한다.

동구 정신보건센터는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노인정신건강 특화사업을 펼쳤다. 이동상담을 진행하면서 600여 명의 노인들과 상담을 했다. 지역 내 경로당, 동구보건소 1층 로비, 노인복지관 등 총 16개 기관을 방문했다.

정신건강 상담원의 기본상담 외에도 우울증, 스트레스 척도검사 자살생각검사, 알콜중독검사 등에서 고위험군으로 나온 사람들은 정신보건 전문요원이 2차 상담을 실시했다. 차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노인들을 센터에 등록, 현재 16명의 노인들이 전문적인 정신건강 상담을 받고 있다.

올 하반기에도 이동상담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동구 정신보건센터는 오는 9월부터 신청을 받아 각 동 주민센터, 복지관, 요양원 등에서 우울증 관련 교육과 상담을 시작한다.

◇홍보활동 지속적으로 펼쳐야

지역사회에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노인들이 기관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주요한 과제다. 울주군 정신보건센터는 2008년 개소 이후 농번기를 피해 경로당 등을 방문, 센터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6회에 걸쳐 우울증 예방교육과 센터자료 배부 등의 홍보활동을 실시했다.

울주군 정신보건센터 박환희 복지사는 “울주군의 노인인구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2~3% 높아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오는 10월~11월에 홍보활동을 또 벌여 지역 노인들의 정신건강 상황을 파악하고 센터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치료가 필요한 노인들을 위해 마더스병원, 서울산보람병원 등과 연계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박 복지사는 “심한 우울증은 자살과 연결되기 때문에 위험하다”며 “조기치료의 중요성과 약물치료에 대해서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연결된 자살예방 및 정신건강 상담전화도 있다. 남구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전국 어디서나 24시간 상담을 할 수 있는 전화를 알고 계신 분들이 많지 않다”며 “전화를 걸면 인근지역 정신보건센터로 연결되며 야간에는 가까운 국립정신병원으로 상담을 할 수있다”고 말했다. 울산지역은 창녕 국립부곡병원으로 연결된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초대석]최정혜 동구정신보건센터 정신보건간호사
“노인 정신건강문제 지원 사회 시스템 구축돼야”
우울증은 기억력 감퇴 등 치매도 불러
전문인력·제도확충, 관계기관 협조 시급

“우리도 언젠간 늙습니다. 노인분들께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죠.”

동구정신보건센터에서 정신보건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최정혜(사진)씨는 노인을 ‘소외계층’이라고 표현했다. 아동과 청소년은 자라나는 새싹이라서, 30~40대는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사회의 관심을 많이 받지만 노인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들의 정신건강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씨는 “최근 들어 노인자살 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신건강쪽도 조금씩 조명받고 있다”며 “예전에는 이 문제를 치매에 국한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우울증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와 교육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노인우울증과 관련해 “우울증 때문에 가성치매에 걸린 노인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함이 기억력 감퇴 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몇 년 전에는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치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르다”며 “병원에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간호대학을 나온 뒤 정신병원에서 10년째 근무하던 최씨가 지역사회로 나온 것은 5년 전이다. 최씨는 “퇴원했던 환자가 병이 재발해 반복해서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역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관리해주면 입·퇴원 환자가 줄어들거라는 생각에 병원을 그만두고 센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않았다. 센터는 5~6명의 직원이 많은 일을 맡다보니 노인, 아동, 청소년, 자살, 우울증, 상담 등의 각 부분에서 세부적인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최씨는 “전국적으로 인력부족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관계기관들의 협조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70~80대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에 대해 전세계에서 의아해 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는 이와 관련한 법률, 제도, 사회적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마련된 것 같지 않다”며 “지금부터라도 미리미리 대비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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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262·1148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1580-1
※자살예방·정신보건 상담전화(전국): 157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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