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노인들의 性 - ① 인식개선 시급

▲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본부장 허진근)는 노인복지관 등에서 일반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 제공

“죽어도 좋아”

외로운 노년을 보내던 두 사람이 일흔이 넘어 만났다. 벤치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됐고, 사춘기 소년과 소녀처럼 연애를 시작했다. 촛불이 올려진 상을 앞에 두고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린 뒤, 두 사람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첫날 밤, “부끄럽다. 불을 꺼달라”고 말하는 이순예(72)씨의 얼굴에서 홍조가 감돌았다.

지난 2002년 개봉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 이야기다.

부부사이인 박치규(73)씨와 이순예(72)씨의 실제이야기를 담았으며, 이들이 직접 연기했다. 사랑에 빠진 노인들의 평범한 모습 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보여준다. 달력에 표시된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들의 사랑도 깊어지고 즐거워진다.

고령화시대 노인 ‘성’문제 수면 위로
노인 10명 중 3명꼴로 성생활 지속
무조건 자제.억압은 건강에도 악영향
부부대화.전문가 등 활성화 절실

◇노인의 성, 편견을 버려야

한국사회에서 ‘노인의 성’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노인이 되면 성적 욕구는 사라지고, 성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다. 성적 욕구를 드러내면 주책이다거나 엉큼하다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성’에 대한 고민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을 듣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전문가들은 노인 성문제에 대한 관대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 이명옥 상담사는 “노인이 되면 성적 기능이 약화될 뿐, 성욕구와 관심은 젊었을 때와 다를바 없다. 노인들의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통념과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노년기의 건강한 성생활이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성적 욕구를 무조건 자제하고 억압하기 보다 부부생활과 건전한 이성교제 등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상담사는 “실제 노인들을 상대로 상담을 하다보면, 성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노인도 10명 중 3명 꼴이다. 65세 이상 노인 1000명 가운데 28.4%가 월 1회 이상 성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 이명옥 상담사가 남구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노인성교육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실시한 ‘서울시 노인의 성’ 연구 결과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는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월 1회 이상 성행위를 하는 노인은 31.3%였으며, 이들 중 53.4%가 성관계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건강한 성생활 해야

성에 대한 욕구와 관심은 높지만, 해소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 노인들도 많다. 부부가 함께 사는 경우 성적 욕구 해소가 비교적 쉽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배우자가 사별했거나 자식들의 시선 등이 두려운 노인들은 방안을 찾기 어려워 하고 있다.

노인의 밝고 건강한 성을 위해서는 노인 스스로가 성 건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건복지부는 노인들의 건강한 성을 위해 △신체의 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 △폐경기를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으로 받아들이기 △부부간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 나누기 △홀몸노인의 경우 자연스러운 만남과 데이트에 적극 참여하기 △음성적인 성관계 피하기 △성기능 유지를 위해 절주와 금연, 운동하기 등을 알리고 있다.

노인들의 성 고민을 상담을 해주는 곳도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 노인 성상담실에서는 노년기 신체의 변화, 부부간의 성 갈등, 성기능 저하, 이성교제, 성충동 문제 등 노인의 성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전반적으로 상담하고 있다.

협회의 노인 성교육과 상담 과정을 수료한 상담사 6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내원상담과 전화상당, 개별상담, 집단상담 등을 하며, 비밀보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상담실 전화 052·270·1380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인구보건복지협 울산지회 - 이명옥 상담사

“손 잡고 눈 마주치고...
이성 만나는 모든 활동이 넓은 범위의 성생활...
성 인격체로 존중해야”

“젊은 시절,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4일 오후 인구보건복지협회 울산지회에서 만난 이명옥 상담사(사진)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인 성상담실에서 성교육과 성상담을 맡고 있는 이씨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운을 뗐다.

“결혼을 해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여느때보다 날씨가 좋아 이불을 빨려고 노크도 없이 시부모님 방문을 무심코 열었죠. 그 때 제가 얼마나 시부모의 ‘성’에 대해 무지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은 결코 무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성 인격체로의 노인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씨는 노인의 성에 대한 ‘이해’가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젊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노인 스스로도 성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의 성을 단순히 ‘성행위’로 국한되는 미시적인 관점이 아니라 ‘배려의 성, 돌보는 성’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는 등 이성을 만나는 모든 활동은 넓은 범위의 성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사회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의사소통과 상호간의 배려를 통해 정서적인 지지와 신체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을 다니며 많은 노인들을 만나는 이 상담사는 경로당에 갈 때마다 할머니방과 할아버지 방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또 성 상담을 하면서 성교육과 상담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 다니다보면 여러명과 함께 있을 때 말씀안하시던 노인분들이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상담실 문이 활짝 열려있으니 언제든 찾아주세요”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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