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직후 유럽 등 세계가 보여준 미국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연대감이 점차 우려와 비난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미국 abc 방송이 27일 보도했다.

 방송은 "편협함과 자기들밖에 모르는 태도 때문에 미국에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으며 미국이야말로 악의 축의 일부"라는 한 프랑스인의 말을 첫머리에 전하면서 이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하나만이 아니라고 전했다.

 9.11 테러 후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나타난 대미 연대감은 미국의 오만과 독단적인 외교정책 때문에 점차 사그라지고 대신 미국 정책과 미국 자체에 대한 불쾌감과 분노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은 9.11 테러 직후의 조건없는 지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또 많은 전문가들은 유럽인들은 아직 미국에 공감하지만 테러 직후 보여준 깊은 동정은 고압적인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우려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도미니크 무아지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은 "9.11 당시의 감정은 사라졌다"며 "요즘 프랑스 신문을 읽으면 위협 주체가 미국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악마의 시"로 유명한 소설가 샐먼 루시디도 "일반인들의 깊은 반미감정은 미국을 항상 비난하는 정치평론가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며 "날마다 런던 시민들이 미국인을 통렬히 비난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 미국에 대한 세계의 분노를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샐리 젠킨스는 쇼트트랙과 피겨 스케이팅에서 논란속에 각각 금메달을 딴 안톤 오노와 사라 휴즈에 대한 국제적인 분노를 예로 들면서 이번 올림픽은 "반미 잔치"였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이런 비난은 전세계가 9.11 테러 직후 보여준 동정심이 사라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들은 9.11 테러 후 수주 간 미국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영국 국민의 4분의3이 9.11 테러범 공격에 영국군이 참여하는 것을 지지했고 70%가 부시 대통령의 대응방식을 지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분위기는 빠르게 변했으며 미국이 유럽 국가와 상의하지 않고 대 테러전쟁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데 대한 불만도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유럽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아프간 전쟁 확대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낮아졌고 소말리아와 이라크 공격에 대한 찬성은 32%에 그쳤다.

 유럽 정치가들은 9.11 테러 후 미국의 외교정책이 더욱 다각화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미국이 힘의 절대적인 우위를 확인하고 더욱 거만하고 독단적인 행보를 보이자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쿠바 관타나모 기지의 캠프 X-레이에 수감된 테러범 처우문제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유럽인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영국 더 타임스의 애너톨 칼레츠키는 "오늘날 미국의 지배적인 지위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아니라 바로 아메리칸 파워(american power)의 거만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사이에 긴장은 항상 있었으며 최근의 반미감정 증가도 정치가와 평론가에 한정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비영리연구기관인 통계평가서비스(SAS)의 연구이사 이언 머레이는 "미국정책에 대한 비난은 정치가 등에 한정된 것"이라며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미국에 대한 지지감정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조지타운대 로버트 리버 교수는 "미국과 유럽은 서방 경제체제의 이해 공유, 자유헌법 정부 등 서구적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며 "유럽인들의 분노가 유럽과 미국간 큰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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