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아름다운 마무리 - 죽음, 준비해야

▲ 울산 문수실버복지관은 지난 15일 ‘준비된 노후가 아름답다’를 주제로 죽음 준비 교육을 실시했다.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거 하지 못하고 살았어. 인생은 마음먹은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행복해.”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이미자(가명·68)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던 이씨는 지난날의 삶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듯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5명의 노인은 이씨의 떨리는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챘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15일 오전 울산 문수실버복지관. 노인들을 대상으로 죽음 준비 교육이 열렸다.

교육에 참석한 20명의 노인들은 ‘나의 사망기 작성’과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곱이곱이 힘든 일이 떠오르지만, 앞으로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해.”

죽음 준비 교육은 노인들에게 남은 삶을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유언장·자서전·사전의료지시서 등 작성으로
지난 나날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게 하는게 목적

◇죽음 준비의 필요성

“나는 어제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였다. 사망한 때에 집에 누워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죽음 준비 교육에 참석한 한 노인은 자신의 사망기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그려봤다. 사망기는 자신을 3인칭으로 하여 부고를 작성해봄으로써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죽음 준비 교육의 한 과정이다.

▲ 죽음 준비 교육에 참가한 노인들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에 대해 글을 작성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문수실버복지관 제공

강의를 맡은 행복한교육연구소 김지영 소장은 “죽음 준비는 지금 당장 죽을 준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노년층이라면 누구나 겪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 수 있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삶을 마무리 짓기보다 앞으로 잘살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인 2명 중 1명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울산시노인복지관에서 실시한 ‘어르신 사후준비에 관한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울산지역 60세 이상 노인 600명 중 314명(52.3%)이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김 소장은 “죽음 준비를 통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고,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며 “이를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확인할 수 있고, 자살 등 잘못된 죽음을 막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고민

엄숙하고 경건하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을 위해서는 지금의 삶을 성찰하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문수실버복지관 권은영 팀장은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인생 설계’는 죽음 준비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스스로 만족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노인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남에게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일과 도전하는 일, 실천 가능한 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여행, 봉사활동 등이 있다.

권 팀장은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풀어나가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며 “죽음 준비 교육을 진행하면서 마음의 문을 연 노인들 대부분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많이 운다. 흐트러진 관계를 풀어야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서전, 유언 마련

일상생활에서 유언과 사전의료지시서, 수의, 자서전 마련 등으로 죽음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언장이나 사전의료지시서 등 문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갑작스런 죽음에 자기결정권을 대신할 수 있는 문서들은 유산상속과 장례절차, 시신기증 등을 놓고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혼란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유언장의 경우, 반드시 자필로 써야 하며 컴퓨터나 대필 등은 무효다. 날짜와 이름, 주소를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가 자신의 치료에 대해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문서형태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지침서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적용 등 특정 치료의 지속이나 중지에 관한 의사를 밝힐 때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외국의 경우 공증을 통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재발견하는 것도 좋다. 특히 사진으로 자서전을 작성할 경우, 과거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모습과 기분, 분위기까지 모두 담아낼 수 있다.

사진 자서전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자서전의 주제 정하기 △갖고 있는 사진 중 자서전의 주제나 방향에 걸맞은 사진을 각 인생주기별로 선택하기 △선택한 사진을 보면서 전체적인 자서전 구성을 설계하기 △주제와 순서에따라 정돈한 후 준비한 파일이나 공책, 앨범에 붙이기 △사진마다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 적기 △글 중간이나 사진 여백 등에 기념이 될 만한 편지나 메모를 함께 붙이기 △자서전 맨앞에 자신의 연대표를 넣거나 머리말, 후기 적기 등이 있다. 김은정기자 new@ksilbo.co.kr

“사는 맛 느끼게 하는 죽음준비교육 하고파”

인터뷰 / 김지영 행복한연구소 소장

“생애 마지막 날까지 죽음 준비 교육을 하고 싶어요.”

행복한연구소 김지영(사진)소장은 자신을 ‘긍정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김 소장의 수업에서도 그의 성격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죽음 준비 교육이지만, 어둡거나 우울한 것이 아닌 희망차고 밝은 분위기였다. 수업 중간에는 비틀즈의 노래가 간간이 흘러나왔고, 수업을 받는 노인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여기가 죽음 준비를 교육하는 곳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의심은 수업이 진행되면서 점점 사라졌다. 죽음은 피해야하고 터부시되어야 할 것이 아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였다. “평소에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삶이 결코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란 걸 알거예요.” 김 소장은 남은 생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이 ‘죽음 준비’라며 60~70대 노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노인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삶에 자신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가족과 일이 다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아는 게 중요해요.” 김 소장은 ‘삶의 소중함’을 여러 번 언급하며 죽음 준비 교육을 통해 삶을 되돌아본 사람들은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밝혔다.

주변 사람의 죽음 때문에 죽음 준비 교육에 뛰어든 지 4년. 김 소장은 자신의 죽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노년층의 생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고 했다.

“사는 맛이 뭔지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 김 소장의 삶에 대한 에너지가 온 교실 가득 퍼졌다.

글=김은정·사진=김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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